페기 구겐하임이 사랑한 베네치아의 작은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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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꼽을 것이다. 베네치아는 100개가 넘는 작은 섬을 400개나 되는 다리로 서로 연결한 도시이다. 비행기에서 베네치아를 내려다보면 거대한 콜라주(Collage) 작품을 보는 것 같다.

베네치아에는 베네치아공화국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궁전이 많다. 그런 화려한 궁전들 사이에 아담한 궁전이 하나 있다. 넓은 테라스가 물과 맞닿은 이 궁전은 팔라초 베니에르 데이 레오니(Palazzo Venier dei Leoni)이다. 내 생각에 이곳은 궁전이라기보다는 저택이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 미완성이기 때문이다. 18세기에 지은 이 저택은 베네치아의 힘 있는 베니에르 가문의 궁전이었다. 지금은 전설적인 컬렉터 페기 구겐하임(Peggy Guggenheim, 1898~1979)이 평생 수집한 작품을 품은, 베네치아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Peggy Guggenheim Collection)이 되었다.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 외부 전경 / 사진출처. © Peggy Guggenheim Collection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 외부 전경 / 사진출처. © Peggy Guggenheim Collection

페기는 미국의 유서 깊은 구겐하임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유하게 자랐다. 하지만 그의 컬렉팅 방식은 재력 과시가 결코 아니었다. 다이아몬드를 사는 대신 그림을 샀다는 페기의 말은 그의 컬렉팅 철학을 보여준다.

페기는 첫 남편을 따라 유럽으로 건너오면서 본격적으로 컬렉팅을 시작했다. 유럽에 머무는 동안 작품을 하루에 한 점씩 사려고 했다는 페기의 일화는 유명하다. 유대계 미국인인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독일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피신해야 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유럽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자리잡은 곳은 그가 오랫동안 머무른 런던이나 파리가 아니었다. 베네치아였다.

그는 1948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자신의 컬렉션을 선보였다. 페기의 컬렉션은 이탈리아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듬해에 그는 바로 '팔라초 베니에르 데이 레오니'에 자신의 컬렉션과 함께 뿌리를 내렸다. 이 저택은 예술로 가득 채운 페기의 인생을 잘 보여준다. 페기가 이 저택에 사는 동안 그의 침실에는 조각가 알렉산더 콜더(Alexander Calder, 1898~1976)가 디자인한 침대 헤드가 있었다.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909~1992)의 그림도 침실을 장식했다. 다이닝 룸에는 입체주의(Cubism) 화가들 작품이 줄지어 있었다. 예술과 함께 살면서 예술을 삶의 전부로 삼은 컬렉터. 그가 바로 페기 구겐하임이다.

페기 구겐하임 / 사진. © Roloff Beny

페기 구겐하임 / 사진. © Roloff Beny

미술관 입구를 지나면 ‘페기의 정원’이 방문객을 맞는다. 페기는 정원 곳곳에 그가 수집한 여러 조각 작품을 놓아두었다. 그는 회화뿐 아니라 조각도 무척 사랑했다. 그는 특히 초현실주의 조각에 관심이 많았다. 페기의 정원에는 장 아르프(Jean Arp, 1886~1966), 콘스탄틴 브랑쿠시(Constantin Brâncuși, 1876~1957) 그리고 헨리 무어(Henry Moore, 1898-1986) 같은 초현실주의 작가의 조각이 있다.

이 작품들은 회화를 넘어 다양한 미술 장르까지 이어지는 페기의 안목을 보여준다. 1951년에 저택을 미술관으로 바꾸어 개방하면서 그가 맨 처음에 연 것도 조각 전시회였다. 정원에는 페기와 그의 반려견들이 함께 잠든 묘비도 있다. 페기는 자신의 컬렉션 사이에서 영원히 쉬고 있다.

구겐하임 정원 / 사진. © 김선경

구겐하임 정원 / 사진. © 김선경

페기 구겐하임과 반려견들 무덤 / 사진. © Rob Lee

페기 구겐하임과 반려견들 무덤 / 사진. © Rob Lee

미술관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페기 컬렉션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와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 1882~1963) 같은 입체주의 작가 작품이 관람객을 반긴다.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의 추상주의 작품도 어우러져 있다.

페기 컬렉션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초현실주의 작품이다. 막스 에른스트(Max Ernst, 1891~1976)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1904~1989) 그리고 도로시아 태닝(Dorothea Tanning, 1910~2012)과 레오노라 캐링턴(Leonora Carrington, 1917~2011) 같은 작가의 작품이다. 이 작품들은 그가 초현실주의에 깊은 애정을 가졌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초현실주의 사조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인간 이성에 대한 회의와 무의식 세계에 대한 탐구에서 태어났다. 전쟁이 주는 공포 속에서 예술가들은 현실에서 벗어난 이상을 꿈꾸었다. 초현실주의 작가들은 이런 생각을 꿈처럼 강렬한 이미지로 표현했다. 페기는 예술이 전쟁으로부터의 해방이자 저항이라는 초현실주의에 공감했다.

1930년대에 파리에서 두 번째 남편인 막스 에른스트(초현실주의 화가)와 만난 것도 그의 컬렉션 방향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초현실주의 선언을 발표한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 1896~1966)을 비롯한 다른 초현실주의 작가와 깊게 교류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페기는 이들과 함께 운명적으로 초현실주의 흐름의 중심에 섰다.

막스에른스트(Max Ernst, 1891-1976)의 <Attirement of the Bride> (1940) Oil on canvas, 129.6 x 96.3 cm / 그림출처. © The Solomon R. Guggenheim Foundation

막스에른스트(Max Ernst, 1891-1976)의 <Attirement of the Bride> (1940) Oil on canvas, 129.6 x 96.3 cm / 그림출처. © The Solomon R. Guggenheim Foundation

제2차 세계대전 때 초현실주의 작가들을 포함한 많은 유럽의 아방가르드 작가들이 미국으로 건너갔다. 전쟁을 피해서였다. 페기는 이들이 미국으로 망명할 수 있도록 도왔다. 미국 비자 발급과 출국을 위한 자금까지 지원했다. 그는 1942년에 미국 뉴욕에 ‘금세기 미술 갤러리(Art of This Century Gallery)’를 열었다. 페기는 이곳에 초현실주의를 포함한 20세기 초 유럽 아방가르드 작품을 전시했다.

이 갤러리는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 같은 젊은 미국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폴록은 이후 미국 현대 미술의 거장이 된 작가이다. 유럽에서 건너온 초현실주의 자동기술법(Automatism)과 무의식에 대한 탐구는 전후 미국의 현대 미술의 주축이 된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의 탄생에 기여했다. 페기는 유럽과 미국을 연결해 현대 미술의 중심이 미국으로 옮겨가는 데 기여한 인물인 셈이다.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의 <Alchemy> (1947). Oil, aluminum, alkyd enamel paint with sand, pebbles, fibers, and wood on commercially printed fabric, 45 1/8 x 87 1/8 inches (114.6 x 221.3 cm) / 그림출처. © The Pollock-Krasner Foundation/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의 <Alchemy> (1947). Oil, aluminum, alkyd enamel paint with sand, pebbles, fibers, and wood on commercially printed fabric, 45 1/8 x 87 1/8 inches (114.6 x 221.3 cm) / 그림출처. © The Pollock-Krasner Foundation/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구겐하임 컬렉션 저택의 테라스는 베네치아 대운하를 향해 열려 있다. 테라스 입구 너머로 보이는 시원한 바다에 나도 모르게 이끌린 기억이 난다. 그곳에는 이탈리아 조각가 마리노 마리니(Marino Marini, 1901~1980)가 1948년에 제작한 ‘도시의 천사 (The Angel of the City)’가 서 있다. 이 작품은 청동으로 기수와 말을 조각한 것이다. 이 작품은 발기한 기수의 모습 때문에 방문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페기는 응접실 창문에서 이 조각상을 바라보며 사람들의 반응을 관찰하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작품을 수집하는 데 있어 누구보다 진지했지만, 유머러스하기도 했던 그의 성품을 보여주는 일화이다.

[좌] 구겐하임 컬렉션 테라스 / 사진. © 김선경     [우] 마리노 마리니(Marino Marini)의 <The Angel of the City> (1948). Bronze, 65 15/16 x 41 3/4 inches (167.5 x 106 cm) / 그림출처. © The Solomon R. Guggenheim Foundation

[좌] 구겐하임 컬렉션 테라스 / 사진. © 김선경 [우] 마리노 마리니(Marino Marini)의 <The Angel of the City> (1948). Bronze, 65 15/16 x 41 3/4 inches (167.5 x 106 cm) / 그림출처. © The Solomon R. Guggenheim Foundation

페기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가까워지자 루브르에 자신의 컬렉션을 보관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루브르는 이 부탁을 거절했다. 그래도 페기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컬렉션을 지켜냈다. 유대인인 자신의 생명도 위태로웠는데도 말이다. 페기가 자신의 컬렉션을 목숨처럼 아끼고 책임감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페기는 그가 사랑하는 베네치아에서 삶을 마쳤다. 그는 왜 인생 후반을 이곳에서 보냈을까? 베네치아가 수 세기 동안 예술가에게 깊은 영감을 준 도시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페기의 삶을 음미해 보면 컬렉터란 예술을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이치를 깨닫게 된다. 그는 예술을 투자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그에게 컬렉팅이란 소유를 넘어 예술가의 혁신적 시도를 지지하는 일이었다. 동시대 컬렉터가 페기에게 배워야 할 것은 예술 자체를 중심에 두는 마음가짐일 것이다. 새로운 가능성을 지지하는 용기도 함께 말이다.

베니스에서 페기 구겐하임 (1968) / 사진. © Tony Vaccaro / Tony Vaccaro Archives

베니스에서 페기 구겐하임 (1968) / 사진. © Tony Vaccaro / Tony Vaccaro Archives

김선경 미술 칼럼니스트

[The Peggy Guggenheim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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