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타이어 등에 쓰이는 천연 고무 가격이 최근 1년간 30% 이상 급등하며 향후 ‘고무 품귀’가 일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세계 고무 생산량의 대부분이 차량에 사용되는 만큼 수요는 꾸준한데, 온도와 습도에 민감한 고무나무의 특성 상 기후변화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세계 주요 고무 생산지에서 고무 나무 대신 수익성이 높은 팜나무 재배로 눈길을 돌리는 생산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고무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타이어 수요 확대…1년간 34% 뛰어
22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도쿄 상품거래소에서 천연 고무 선물은 지난 1년간 34.3% 급등해 현재 ㎏당 381.50엔에 거래되고 있다. 2020년 상반기만 하더라도 130~140엔에 거래됐던 천연고무는 그해 10월 300엔을 찍으며 급등했다. 이후 가격은 다시 200엔대로 안정되는듯했으나 지난해 초부터 가격 상승이 시작돼 9월에는 400엔을 돌파했다. 10월 2일에는 439.70엔을 기록하며 7년만에 최고치를 나타냈다. 블룸버그 통신은 “천연고무는 지난해 코코아, 커피와 함께 가격 상승폭이 높았던 작물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고무 가격은 기후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수요와 공급 측면 모두 기후가 변수로 작용한다. 우선 천연고무 생산량의 약 75%가 차량용 타이어에 사용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천연 고무는 차량 타이어 트레드(노면과 닿는 타이어의 표면)의 필수 재료다.
녹색 에너지 전환 요구가 높아져 전기차 보급이 늘어나면 세계 천연고무 수요는 현재 생산량(연간 약 1500만t)보다 더 확대될 전망이다. 전기차는 배터리 때문에 내연차보다 더 무겁고, 이는 타이어 마모를 가속화하기 때문이다. 스콧 클락 미쉐린 부사장은 2022년 투자자 컨퍼런스콜에서 “전기차가 기존 차량 대비 타이어를 약 20% 더 빨리 소모한다”고 밝혔다. 차량 사용자들의 타이어 교체 주기가 더 빨라질 것이란 의미다.
○재배 난이도는 높아져
기후 변화로 인해 고무 나무 재배 환경은 악화됐다. 고무 나무는 온도와 습도에 매우 민감한 작물로 일정한 평균 기온(섭씨 26℃~28℃)과 충분한 강우량이 필요하다. 때문에 고무나무 재배지의 80% 이상이 동남아시아에 있다. 동남아 지역 생산량 중 태국이 약 33%를 차지하고 인도네시아(약 20%), 베트남(약 10%)이 뒤를 잇는다.
하지만 최근 이상 기후가 빈번해지면서 공급에 차질이 생겼다. 지난달 초 태국 남부에서 홍수가 발생한 탓에 농부들이 고무를 수확하지 못했고 생산량은 32만t 가량 줄었다. 세계 연 소비량의 약 2%에 해당하는 양이다.
대내외적 요인으로 고무 나무 재배 면적은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인도에서는 2010년 이후 고무 재배 면적이 약 20% 줄어든 것으로 파악된다. 태국에서는 고무 생산량이 2004년에 정점을 찍은 뒤 이후 약 27%가 감소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2017년을 정점으로 유사한 비율로 생산량이 줄어들었다.
블룸버그 통신은 “고무 채취는 굉장히 노동 집약적인 산업이고 소규모 생산자들 위주로 구성돼있다”며 “수익성을 고려해 팜유 재배로 전환하는 생산자들이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팜나무는 고무나무 대비 키우는 데에 훨씬 적은 시간(3년)이 걸리고 수확 과정에서 많은 인력을 필요로하지 않는다. 한 연구에 따르면 스리랑카에서는 팜유의 헥타르당 수익이 고무보다 20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 유럽연합(EU)의 산림전용방지 규정도 고무 산업에 타격을 준다고 블룸버그 통신은 짚었다. 지구 온난화 때문에 고무나무 재배 지역이 점차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산림전용방지법에 따르면 기존 산림에서 새로 용도가 전환된 지역에서 생산된 원자재 및 제품은 EU 역내 유통이 금지돼서다.
한경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