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텀싱어? 춤꾼? '대체불가 소리꾼'을 향하는 김수인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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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창극단 무대에서 김수인. 국립극장 제공

국립창극단 무대에서 김수인. 국립극장 제공

국립창극단의 배우이자 소리꾼 김수인(31)은 지금 대체불가능한 사람이 되기 직전의 자리에 서 있다. 김준수와 유태평양 등 국립창극단의 간판 배우들이 올해 초 연달아 떠났다. 그들은 국립창극단을 대표하는 상징에 가까웠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공백이 생겼고, 그 공백은 곧 누군가의 책임이 됐다. 김수인은 그 무게를 누구보다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지난 21일, 국립극장에서 그를 만났다.

"공백을 기회로 만들기 위해, 정신 바짝 차리고 있어요."
2020년 입단 이후 김수인은 국립창극단에서 꾸준히 비중 있는 배역을 맡아왔다. 객석에서도 그의 존재감은 분명해졌고, <팬텀싱어4> 출연 이후 팬덤 역시 빠르게 형성됐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현재를 성취로 규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끊임없이 자신을 '입단 초기의 마음'으로 되돌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국립창극단 무대에서 김수인. 국립극장 제공

국립창극단 무대에서 김수인. 국립극장 제공

"창극단 배우의 기본은 결국 소리잖아요. 그걸 더 깊이 공부하고 싶어서 올해 대학원에도 진학했어요. 제 근간은 소리고 이게 탄탄하지 않으면 앞서 간 선배들에게도 면목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에게 소리는 직업 이전에 세계와 소통하는 방식이다. 그는 무대 위에서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조금씩 알게 됐지만 그 모든 것은 결국 소리라는 뿌리 위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도 동시에 깨닫고 있다.

김수인이 창극의 세계로 들어온 계기에는 김준수의 무대가 있다. 그가 아직 관객이었을 때, 김준수가 <패왕별희>에서 연기한 '우희'를 봤다. 그는 그 장면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소리와 몸, 감정이 하나로 엮여 김준수가 우희가 되는 장면. "그때 처음 생각했어요. 아, 창극이 이렇게까지 나갈 수 있구나. 내가 하고 싶은 건 이거구나."김준수와 유태평양은 이후 김수인의 선배가 됐고, 동시에 가장 가까운 기준점이 됐다. 유태평양은 김수인에게 단순한 선배가 아니었다. 연기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무대 위에서 무엇을 덜어내야 하는지, 어디에 힘을 주고 어디에서 빠져야 하는지를 가장 구체적으로 가르쳐준 사람이었다.

유태평양이 찍어준 김수인의 프로필 사진. ⓒ준열

유태평양이 찍어준 김수인의 프로필 사진. ⓒ준열

유태평양은 김수인의 배우용 프로필 사진을 직접 찍어주기도 했다. 조명과 구도, 표정 하나까지 세심하게 봤다. 김수인은 그 일을 아직도 감사하게 기억한다. 연기를 가르쳐주던 사람이 사진까지 찍어준다는 건, 그만큼의 시간을 들였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김준수와 유태평양은 종종 "수인이 네가 있어서 믿고 떠난다"며 농담처럼 말했지만 김수인은 이 두 사람의 부재가 작지 않을 것임을 직감하고 있다. 그는 선배들이 닦아놓은 길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걸어온 사람이다. 이제는 김수인만의 가시덤불을 헤치며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야 할 차례다. "두 분은 제 미래 이미지이기도 했어요. 관객일 때부터, 그리고 창극단 동료가 된 지금까지 계속 그들의 무대를 보며 자랐거든요. 어떤 예술가가 되고 싶은지, 그걸 보면서 많이 생각했어요."

국립창극단 무대에서 김수인. 국립극장 제공

국립창극단 무대에서 김수인. 국립극장 제공

김수인의 이력은 단순하지 않다. 그는 어머니에게서 소리를 배웠고, 변성기를 겪으며 목소리를 잃었다. 그 시기 그는 한국무용을 전공하며 소리에서 멀어졌다. 삶이 다시 소리로 돌아온 건 제대 후 대학에서 은사를 만나면서부터였다. 그때 처음으로 소리가 부담이 아니라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제가 소리랑 안 맞는다고 생각했던 것 자체가 오만이었더라고요. 소리가 이렇게 정교하고 섬세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고, 무용으로 단련한 몸이 오히려 소리에 도움이 많이 됐어요.”

몸이 풀려야 목이 풀린다는 건 소리꾼들 사이에서 자주 하는 말이다. 두 장르를 모두 통과한 김수인은 2020년 소수정예 창극단원으로 선발됐고, 입단 첫해부터 주연을 맡았다. 소리는 더 이상 도망친 과거가 아니라, 그를 앞으로 끌어당기는 힘이 됐다.

그가 느끼는 가장 큰 변화는 여유다. 입단 초기에는 해내는 데 급급했다면, 지금은 무대에서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알게 됐다. 그 변화가 분명하게 드러난 순간은 지난해 공연한 <이날치전>이었다. 그는 그 작품을 통해 구조를 이해했고, 앙상블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감각적으로 파악하기 시작했다.

무대 위의 경험이 깊어질수록 무대 밖의 삶 역시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김수인은 스스로를 자신에게 쉽게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그에게 "잘 나간다"고 말하지만, 그는 그 말에 거의 동의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더 많이 훈련하고 더 많이 질문한다. 소리 연습은 놀이에 가깝다. 재미없는 것을 오래 하지 못하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소리는 오랫동안 그에게 재미로 지속돼 왔다.“예전에는 소리를 구조적으로 계산했어요. 그런데 그 목소리에 감정을 싣는 호소력은 아직도 갈 길이 멀어요. 근데 그 과정이 진짜 재밌어요.”

국립창극단 무대에서 김수인. 국립극장 제공

국립창극단 무대에서 김수인. 국립극장 제공

김수인은 무대에 설 때가 가장 행복하다. 무대에 오르기 전의 긴장감, 막이 열리고 객석이 보이는 순간의 감각을 그는 아직도 소중하게 여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처음 창극단원이 돼 오른 <나무, 물고기, 달>이다. 그는 이 작품을 자신의 ‘0순위’이자 보물이라고 불렀다. 무대에서 느낀 행복을 처음으로 분명하게 인식하게 해준 작품이어서다.

소리꾼으로서 크로스오버 4중창단을 선발하는 방송 프로그램 <팬텀싱어4>에 참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국립창극단이 전통에만 고착되지 않는 단체였기 때문이다. 방송 이후 그의 무대에는 이전과 다른 관객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저를 보고 처음 창극을 보러 오셨다는 분들이 생겼어요. 제 완창을 보기 전에 국립극장의 판소리 완창을 예습했다는 분도 있었고요."

웃으며 한 말이지만 김수인은 그 변화가 무엇인지 체감하고 있다. 누군가는 김수인을 통해 처음으로 창극을 알게 됐고 그를 통해 전통을 만났다는 것. 그는 어느새 관객을 끌어모으는 배우가 아니라 관객이 이동하는 통로가 됐다. 물론 이 사실은 부담스럽다. 그러나 김수인은 안다. 이러한 현상이 계속 무대에 서고 싶게 만드는 이유이자 창극단의 새로운 간판스타로 나서게 될 원동력일 것임을.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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