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영화 ‘파과’ 민규동 감독이 ‘파과’ 속 60대 킬러 여주인공으로 할리우드 스타 틸다 스윈튼이 캐스팅 될 뻔(?)한 에피소드와 관련한 봉준호의 반응을 전해 웃음을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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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규동 감독. (사진=NEW) |
민규동 감독은 영화 ‘파과’의 개봉을 기념해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파과’는 바퀴벌레 같은 인간들을 처리하는 조직에서 40여 년간 활동한 레전드 킬러 ‘조각’(이혜영 분)과 평생 그를 쫓은 미스터리한 킬러 ‘투우’(김성철 분)의 강렬한 대결을 그린 액션 드라마다. 구병모 작가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로 각색했다. ‘허스토리 ’, ‘내 아내의 모든 것’,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장르의 연금술사 민규동 감독이 연출한 신작이다. 특히 레전드 킬러 ‘조각’으로 분한 이혜영과 미스터리한 킬러 ‘투우’로 변신한 김성철이 섬세한 감정과 강렬한 액션을 완벽하게 표현해냈다.
소설 ‘파과’의 원작 팬들이 많고 이전에도 영화화에 대한 요청은 많았으나, 현실적으로 60대 여성이 주인공으로 액션까지 소화해야 하는 원작의 설정상 이 작품을 상업영화로 만들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란 반응이 많았다.
민규동 감독 역시 영화 ‘파과’가 지금의 완성본으로 세상에 나오기까지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고 토로하며 처음 원작을 읽고 영화화를 생각했을 때 떠올렸던 초기 아이디어들을 밝혀 흥미를 유발했다.
민규동 감독은 쉽지 않은 도전에 위험을 감수하고 원작의 영화화를 택한 계기를 묻자 “원작자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셨던 거 같다. 제가 처음 원작을 읽었을 땐 작품이 절판 위기에 놓여있었지만, 스스로는 숨겨진 보물을 건져내는 발견의 재미를 느꼈다”며 “초고는 과거 없는 현재의 서사로만 정리했었다. 사실 소설에 과거 이야기가 많이 녹아 있어 이야기 전개가 어렵더라. 새로운 반전, 각각 인물들의 동기를 충실히 합리적으로 만들려 노력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장르적으로는 완전히 액션 영화로서 하드보일드한 장르에 충실한 영화가 되어야만 이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겠구나 싶었다. 제목도 낯설고 주인공도 너무 새로웠기에 제작자 분들이 그 전까지 영상화 시도를 했지만 그만큼 실패도 많이 하신 것 같았다. 제 감독 친구들도 소식을 듣고 전화를 해줬다. ‘나도 너무 하고 싶은데 자기가 하네? 응원한다. 근데 어렵지 않아?’ 그런 이야기도 나눴던 기억”이라고 떠올렸다.
민규동 감독은 “완전히 도파민과 스펙타클로 가득한 노골적 액션 영화로만 만들기엔 원작에 좋은 에센스가 숨어져 있는 만큼 묘한, 드라마 가득한 액션을 해야겠다 생각했다”며 “처음 소설 읽었을 때는 근미래의 마을에서 ‘틸다 스윈튼’이 킬러로 일하는, 한국의 지하세계 자경단의 느낌을 상상 했다. 그게 막연한 첫인상이었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실제로 관련한 구상을 봉준호 감독에게 전하기도 했었다고. 그는 “봉준호 감독에게 ‘나 시나리오 쓰면 틸다에게 전해줄 거죠?’ 물어도 봤다. 봉준호 감독님이 ‘물론이죠’라고 대답도 해줬다. 첫 이미지는 그렇게 시작했다”고 전해 웃음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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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실제로 들어가 보니 이게 왜 만들어지기 힘든지 알게 됐다. 연기할 배우가 없더라. 그 정도의 액션은 평생을 준비해야 가능한 수준에 단기간 트레이닝으로 소화 가능한 이미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이혜영 선배를 만났을 땐 이 영화가 비로소 태어날 수 있겠구나, 어쩌면 텍스트보다 풍성한 선물이 되어줄 수 있겠구나 안도했다”고도 고백했다.
민 감독은 “‘파과’의 초고를 쓴 게 2019년 7월이더라. 그렇게 136고를 거쳤다”고 전해 놀라움을 안겼다. 그러면서 “만들어질 때까지 끝까지 고치니 136고가 됐더라. 참고를 위해 ‘늑대인간’까지 봤다. 초능력을 가진 소수 종족인데 인간세계의 쓰레기를 처리하는 사람이 주인공이면 어떨까도 생각했다”며 “그렇게 원작과 창작의 밸런스를 적절히 맞추다 여기까지 왔다”고 토로했다.
이혜영은 ‘파과’의 제작보고회 당시 ‘파과’와 함께 지난 2월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됐던 봉준호 감독 작품 ‘미키 17’을 언급하며 “베를린 반응을 봤는데 (우리 영화가) ‘미키 17’보다 재미있더라”는 재치있는 멘트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에 대해 민규동 감독은 “당시 선생님의 말씀은 진심이셨던 것 같다”며 “자신을 포함해 (‘파과’로) 자신의 새로운 자아 하나가 더 추가된 것인데 그만큼 (작품, 캐릭터에 대한) 개인적 애정이 높으신 것 같더라”고 말했다.
이어 “봉준호 감독을 실제로 베를린에서 만났고 나 역시 ‘미키 17’을 너무 보고 싶어서 즐겁게 시사회도 갔었다”라며 “그 후에도 한국에서 ‘미키 17’을 또 다신 자막과 함께 감상할 정도로 애정역시 깊었다. 어쩌면 함께 베를린에 갔고, ‘파과’의 시사회가 ‘미키 17’의 바로 다음 순서로 부담ㄷ 됐다. 그런 점에서 부러움과 뿌듯함이 교차한다. 봉준호 감독은 그런 맥락에서 선생님의 그런 농담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도 덧붙였다.
봉준호 감독 역시 ‘파과’의 사사회에 참석해 지원사격을 펼쳤다. 민 감독은 봉 감독의 반응에 대해 “박수를 크게 치며 여러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 중 하나가 ‘기생충’에서 ‘다송’ 역을 맡은 현준(아역배우 정현준)이의 이야기였다”라며 “‘기생충’ 현준이가 벌써 그렇게까지 컸냐며 놀라 하더라”는 비하인드를 전했다. 아역배우 정현준은 ‘기생충’에서 연교(조여정 분)의 아들 ‘다송’ 역을 맡아 적지 않은 활약을 펼쳤다. 정현준은 ‘파과’에서 투우의 어린 시절을 연기했고, ‘기생충’ 때와 비교해 몰라보게 성장한 모습으로 눈길을 끈다.
민 감독은 “그 아이가 ‘파과’엔 적게 나오지만, 그 아이가 영화의 감정적 클라이맥스를 책임져준다고 생각한다고 하더라”며 “너무 잘해줬다고 했다. ‘투우’의 아역이 어린 ‘아이’로 나와서 조각에 대한 감정이 모성애로 오해되는 게 싫었기에 원래 나이 또래에 비해 좀 더 큰 모습을 기대했다. 그 또래에서 세상을 봤을 때 (조각은) 내 인생을 파괴하며 자신을 구원해주는 어떤 존재이지 않았을까. 그런 이미지를 실제 연출하면서도 찾았는데 봉준호 감독도 현준이의 모습을 보며 뿌듯해 하신 것 같다”고 부연했다.
‘파과’는 지난달 30일 개봉해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