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시간 트럼프 비판 연설한 美상원의원…68년 만에 신기록

1 day ago 4

미국 민주당 코리 부커 상원의원이 1일(현지시간) 상원 회의장에서 연설하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미국 민주당 코리 부커 상원의원이 1일(현지시간) 상원 회의장에서 연설하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31일 오후 7시부터 다음 날 오후 8시 5분까지, 미국 민주당의 코리 부커 상원의원(56)이 25시간 5분이라는 ‘역대 최장 시간 연설’ 기록을 세웠다. 전날 자신의 X(엑스)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법치주의와 헌법, 미국 국민의 요구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는 예고 글을 올린 뒤 상원 회장에서 무박 2일 마라톤 발언에 나선 것이다.

특히 1일 오후 7시 19분이 된 순간에는 회의장 안에서 그를 지켜보던 민주당 의원들이 환호하며 기립박수를 보냈다. 1957년 스트롬 서먼드 당시 상원의원이 흑인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민권법에 반대하며 세운 24시간 18분의 종전 상원 최장 발언 기록을 깬 순간이었다. 부커 의원도 감정에 북받친 듯한 표정으로 잠시 말을 멈추고 가슴에 손을 얹었다. 같은 시각 부커 의원과 주요 외신의 유튜브 채널 생방송 시청자 수는 30만 명을 넘어섰다.

전날 스프링으로 제본된 두툼한 서류철을 들고 연단에 선 부커 의원은 “저는 진심으로 이 나라가 위기에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일어섰다”라며 “물리적으로 가능할 때까지 정상적인 상원의 업무를 중단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이어진 그의 발언은 의료, 교육, 이민, 외교정책 등을 망라했다.

그는 “대통령은 고작 71일 만에 국민의 안전, 국가 재정 안정, 민주주의의 핵심 토대에 너무 많은 해를 입혔다”라며 머스크 CEO의 연방정부 구조조정부터 건강보험 축소 가능성 등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각종 주요 의제를 수 시간에 걸쳐 나열했다. 트럼프 행정부를 맹렬히 비판하며 유권자들의 편지와 언론 보도, 유명 연설문 등도 함께 읽었다.

온라인매체 액시오스 등 외신들은 부커 의원이 음식도 먹지 않고 화장실도 가지 않은 채 연단을 떠나지 않았다고 전했다. 발언 내내 그의 앞에 있었던 것은 물 두 잔이 전부였지만, 부커 의원은 발언 20시간을 넘어선 뒤에도 연신 땀을 닦아가며 커다란 목소리로 연설을 이어갔다. 최장발언 기록을 세운 직후엔 “지금 내가 느끼는 생물학적 긴급함을 좀 처리해야 한다”라고 농담하기도 했다.

기존에 현직 의원 중 최장발언 기록을 갖고 있던 공화당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장시간 발언을 이어가는 부커 의원에게 해줄 조언이 있느냐”는 언론의 질문에 “물을 마시지 말고 편한 신발을 신으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앞서 그는 2013년 9월 ‘오바마케어’로 알려진 건강 보험법에 항의하며 21시간가량 연설을 한 바 있다.

스탠포드대 재학 당시 미식축구 선수로 활동하던 부커 의원. 사진출처 코리 부커 공식 웹사이트

스탠포드대 재학 당시 미식축구 선수로 활동하던 부커 의원. 사진출처 코리 부커 공식 웹사이트

스탠퍼드대 시절 미식축구 선수로 뛰었던 부커 의원은 미국의 엘리트 대학생들에게 최고의 영예로 꼽히는 ‘로즈 장학생’에게 선발돼 영국 옥스포드대에서 유학한 뒤 예일법대를 졸업했다. 2013년 뉴저지주에서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상원의원에 당선된 뒤 재선에도 성공했다. 2019년에는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경선에 출마했다가 중도 낙마했지만, 상원 민주당 지도부에서 전략 커뮤니케이션 의장을 맡는 등 활발한 의정활동을 보이고 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의회 내에서 그는 ‘마음만 먹으면 더 올라갈 수 있는 사람’으로 여겨진다”고 평가했다. 미 CNN방송 등은 이날 부커 의원의 마라톤 연설이 지난해 대선에서 민주당이 참패한 뒤 지지층으로부터 ‘강경노선’을 취하라는 압박이 거세지는 가운데 이뤄졌다고 진단했다. 민주당 의원들도 질문과 지지 발언을 통해 부커 의원이 잠깐이나마 휴식할 수 있도록 도왔다. 척 슈머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당신의 힘와 불굴의 의지, 명료함은 놀라움 그 자체”라고 추켜올렸고, 기록을 깬 순간에는 “이 의회가 당신을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 아느냐”며 박수를 쳤다.

AP통신은 “민주당 내에서 차세대 리더십 물색 작업이 이어지는 가운데, 부커 의원은 이번 연설을 계기로 반(反)트럼프 핵심 인물로서의 입지를 굳힐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액시오스도 “부커 의원은 대선 패배 후 50년 만의 수렁에 빠진 민주당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해리슨 필즈 백악관 대변인은 “부커 의원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1960년 영화에서처럼 ‘내가 스파르타쿠스다’를 외치고 싶어 하지만 효과가 있었던 적이 없다”고 일축했다고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한편 이날 부커 의원의 발언은 상원에서 토론 발언은 시간을 제한하지 않는다는 의사규칙을 활용했지만, 특정 법안의 통과를 막기 위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는 해당하지 않았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