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임우선]‘어린이날’ 미국에서 생각한 한국 교육

3 weeks ago 11

임우선 뉴욕 특파원

임우선 뉴욕 특파원
“너희들은 좋겠다.”

한국의 어린이날이 있던 지난주, 뉴욕 맨해튼의 한 공원 앞을 지나다 뛰노는 아이들을 보고 혼잣말이 나왔다. 요즘 뉴욕은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가로수 잎사귀만큼이나 야외로 나오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또래들과 놀며 행복해하는 모습에 흐뭇함과 동시에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한산하다 못해 적막하기까지 한 한국의 놀이터, 그리고 자기 등보다 큰 가방을 짊어지고 밤늦도록 학원가를 걷는 아이들이 떠올라서다.

‘혼자’ 아닌 ‘함께’ 강조하는 교육

밝고 활기찬 모습의 미국 아이들을 볼 때마다 상대적으로 무표정한 우리 아이들과 다른 모습을 만든 건 무엇일까란 생각이 든다. 세계 최저 수준 저출산 국가에 태어난 아이들을 더 귀하게 키워도 모자랄 판에 청소년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란 것만으로도 한국 사회와 어른들은 책임을 통감하고 반성도 해야 한다.

두 나라 아이들이 처한 환경은 많은 부분이 다르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것 중 하나는 ‘시험’과 ‘평가’다. 사실 미국 학교는 한국보다 시험을 더 많이, 자주 본다. 교사부터 주(州)까지 다양한 차원에서 시험을 실시하며 끊임없이 ‘교육 청진기’를 댄다. 하지만 아이들은 대부분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초중고교의 거의 모든 평가가 한국과 달리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시험은 끊임없이 나 자신의 발전보다 남과의 비교 우위를 요구한다. 학창 시절 내내 긴장과 초조함 속에 바로 옆 친구를 의식하도록 만드는 구조다. 미국은 반대다. 오히려 학교에서 중시하는 건 내 옆자리 친구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것이다. 미술 작품 만들기부터 수학 문제 풀기까지 전 영역에서 ‘협업’을 요구하는 활동이 많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조율하며, 함께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야 다 같이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

시험 역시 ‘줄 세우기 효과’는 약하다. 시험 문제는 꼭 알아야 할 핵심 위주로 나오며, 변별력을 위해 기묘하게 꼬거나 이른바 디테일을 강조하는 문제는 사실상 없다. 시간 제한이 없는 시험도 많다. 오늘 풀다 다 못 풀면 내일 마저 풀 시간을 주기도 한다. 한국처럼 유치원 때부터 ‘연산 지옥’에 빠질 이유도 없다. 초등학교에선 계산기를, 중학교부터는 공학용 계산기를 쓰기 때문이다.교육의 중심은 학원 아닌 학교

학교의 운영 방식과 분위기도 차이가 크다. 지역과 학교별로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초등학교의 경우 보통 오전 8∼9시에 등교해 오후 3∼4시까지 수업을 한다. 시간표는 국어(영어), 수학, 사회, 과학 및 기타로 담백하게 구성돼 매일 빠짐없이 기초 과목을 다룬다. 하루 중 20∼30분은 반드시 전 학년이 야외로 나가 놀이 시간을 갖는다. 수업이 늦게 끝나니 돌봄 교실이나 학원이 딱히 필요 없는 구조다.

한국 기준에서 보자면 ‘칭찬 폭격기’ 수준으로 교사와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응원과 격려의 말을 많이 하는 것도 미국 교육의 특징이다. 어릴 때부터 ‘잘했어’, ‘괜찮아’, ‘할 수 있어’, ‘이전보다 좋아졌어’ 같은 말을 늘 들어서인지 전반적으로 긴장감은 낮고, 자존감이 높으며 여유가 넘치는 아이들이 많다.

언젠가 30년 이상 해외 각국을 경험한 산업 전문가가 한국의 치명적 한계에 대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라별로 100명씩을 뽑아 한 사람 한 사람의 맨파워를 따지면 한국이 압도적 1등일 거다. 하지만 100명의 능력을 합쳐 비교하면 한국은 미국을 이길 수 없다.” 아이들의 오늘과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진짜 전해야 할 어린이날 선물은 새로운 교육 시스템이란 생각이 든 어린이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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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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