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임우선]美가 제조업 따지면, 韓은 서비스업으로 반박해야

2 days ago 5

임우선 뉴욕 특파원

임우선 뉴욕 특파원
20대 이하에게는 선사시대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이 세상에 스마트폰이 없던 시대가 있었다. 인터넷은 있었지만 모바일은 없던 그때, 국내 정보기술(IT) 업계에는 수많은 한국 기업이 있었다. 검색 시장은 7 대 2 대 1 비율로 네이버와 다음, 네이트가 차지하고 있었다. 구글은 한국에 진출했지만 점유율이 너무 낮아 홍보팀조차 ‘성장률’만 말하지 점유율은 숨길 정도였다.


미국에 먹힌 한국의 IT기업들

이제는 화석같이 느껴지는 표현인 ‘UCC(동영상 손수제작물)’ 분야에도 판도라TV, 다음TV, 엠엔캐스트 등 여러 한국 기업이 시장을 주도했다. 특히 압도적 1위였던 판도라TV는 2009년에 이미 월간 페이지 뷰(PV)가 4억 건에 육박했다. 당시 한국에 진출한 유튜브는 점유율 2%대였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싸이월드가 ‘국민 플랫폼’이었다. 미국 하버드비즈니스스쿨(HBS)에서 싸이월드를 케이스 스터디로 연구할 정도였다.

하지만 15년이 지난 지금, 국내 IT 서비스는 ‘그런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미국에 잠식됐다. 2%도 안 됐던 구글의 검색 점유율은 이제 30%에 육박한다. 미국에서조차 반(反)독점 소송이 진행 중인, 안드로이드폰에 구글 앱을 ‘강제 선탑재’한 덕이 컸다. 대신 다음은 2%대로 주저앉아 이젠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빙’에도 밀리는 신세다. 0%대인 네이트는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됐다.

동영상 분야는 유튜브 세상이 됐다. 1위 사업자였던 판도라TV를 망하게 한 건 외국 기업에는 속수무책이면서 한국 기업만 잡았던 정부의 ‘저작권 삼진아웃제’였다. 구글 등에는 플레이스토어 독점에 따른 갑질 문제, 수수료 문제, 개인 정보 무단 수집 문제, 한국에서 얻는 10조 원 넘는 수익에 대한 세금 회피 문제 등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이들 앞에만 가면 힘을 못 썼다.

싸이월드는 이제 ‘선재 업고 튀어’ 같은 타임슬립 드라마에나 추억의 상징으로 나오는 존재가 됐다. 대신 그 자리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차지했다.


韓, 서비스업 피해 잊지 말아야
하지만 이달 미 무역대표부(USTR)가 발표한 국가별 무역장벽보고서를 보면 구글 등 미국 IT 기업들은 아직도 배가 고픈 듯하다. 이들은 망 사용료와 위치 기반 데이터(지도 정보), 경쟁 정책과 데이터 현지화, 공공부문 클라우드 보안까지 5개 분야를 걸고넘어졌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지도 정보’ 요구다. 구글은 2007년부터 20여 년간 한국의 정밀 지도를 해외로 반출하기 위해 집요한 노력을 펼쳐왔다. 한국은 북한이란 안보 특수성을 고려해 2만5000분의 1보다 상세한 지도는 해외 반출을 불허한다. 하지만 이 때문에 위치기반 광고와 내비게이션, 자율주행 등 주요 시장 진출이 막히자 구글은 2016년 전방위적 로비와 압박을 가하며 한국 정부와 ‘지도 전쟁’을 벌인 바 있다. ‘전 세계에 이런 나라는 한국뿐’이라며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한국의 사정을 무시했다.

‘공공부문 클라우드 보안’에 대해서도 한국의 데이터 보안 요구가 까다로워 중앙정부 등 주요 기관의 클라우드 수주를 못 하고 있다며 조건 완화를 요구했다.

앞으로 미국은 ‘25%의 상호 관세를 낮추고 싶으면 요구를 수용하라’며 한국 정부를 강하게 압박해 자국 기업의 숙원 사업을 해결하려 들 가능성이 크다. 정부 내에서도 조급한 처지의 부처 간에 이해가 갈릴 수 있다. 하지만 최소한 지킬 것은 지키며 협상에 임했으면 한다. 미국은 눈에 보이는 ‘제조업’에 대한 무역 적자만 따지고 있지만 디지털과 금융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서비스업’에서는 이미 충분한 이익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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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우선 뉴욕 특파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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