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이상훈]패전 80년, 일본 戰後 역사 인식에 주목한다

2 days ago 4

이상훈 도쿄 특파원

이상훈 도쿄 특파원
지난해 12월, 일본 가사마(笠間)시 가미카제 특공대 기지를 찾은 건 우연이었다. 특공대 특별 전시회를 소개하는 방송 프로그램을 보면서 순간 눈을 떼지 못했다. “특공을 명령한 쪽(지휘관)과 명령받은 쪽(병사), 양쪽에서 볼 수 있는 전쟁 비극을 상상해 줬으면 한다”는 전시회 담당자의 당부는, 평균적인 일본의 전쟁 인식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지금은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이 자리하고 있는 그곳은 80년 전에는 특공대 부대였던 해군 항공대 사령부였다. 1944년 항공대 사령으로 부임한 오카무라 모토하루(岡村基春) 대령은 특공대를 진두지휘했다. 이 부대는 태평양 전쟁 중 일본 최대 지상전이었던 오키나와 전투에서 세계사에 유례없는 자살 특공을 감행했다. 그럼에도 전쟁을 일으킨 것에 대한 반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전쟁을 미화하지 않는 평범한 일본인들도 “우리가 잘못했다”는 반성 대신 “다시는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만 반복한다.


한국인 희생 흔적 감추기 급급했던 日

가미카제 자살 특공은 단순히 미군 항공모함에 자국 전투기를 들이받은 무모한 작전이 아니다. 일본이라는 국가를 위해 자국민과 식민지 백성까지 전쟁 희생양으로 내몬 극단적 전쟁범죄다. 패전 후 일본군은 상당수 전쟁 기록을 불태워 없앴지만, 한국인들이 희생당했던 흔적을 모두 감출 순 없었다. 80년 전 한국인을 태우고 가다 침몰했던 우키시마호 승선자 명부, 한국인이 강제로 징용된 사도광산 조선인 연초 배급 명부 등에 이름으로만 남은 한국인들은 지금까지도 어떻게 끌려가 혹독한 차별에 시달렸는지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올해 쇼와(昭和·히로히토 일왕 연호) 100년, 전후(戰後) 80년을 대대적으로 주목한다. 전쟁 폭주와 패전, 경제 부흥으로 이어지는 쇼와 시대를 되짚고, 80년간 이어온 평화 국가 행보를 이어가겠다는 다짐이다. 나루히토(徳仁) 일왕은 일본에서 전쟁을 상징하는 지역인 오키나와, 히로시마, 나가사키를 도는 ‘위령 여행’에도 나설 계획이다.

하지만 ‘전후 반성’에 대해서는 책임 있는 일본 정치인 누구도 적극적으로 발언하지 않는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는 연두 기자회견에서 “전후 80주년을 맞아 국제 평화와 안전을 위해 우리나라(일본)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고 실천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고만 말했다. 여기에는 과거가 없다. 과거가 없으니, 당연히 반성도 없다.

2000년대 들어 일본은 역사에 침묵하고 왜곡하는 나라가 됐다. 특히 2015년 8월 14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전후 70년 담화’에서 “전쟁과 아무 관계가 없는 후세대에 사과를 계속할 숙명을 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선언한 뒤로 이런 경향이 강해졌다. 패전 후 반복해 사과했으니, 더는 사죄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후 일본 정부 우경화는 잘 알려진 대로다. 교과서에서 ‘종군(從軍) 위안부’ 표현 삭제를 주도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전 총리, 한국 정부 강제징용 배상 대법원 판결 해결책에 “역대 내각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고만 밝힌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전 총리 등의 행보는 변하지 않은 일본 정부의 과거사 인식을 보여준다.


한일 관계 개선, 진정한 과거사 인식 필수

패전 80주년이자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인 올해는 한일 관계 개선 및 협력 강화를 비약적으로 도모해야 할 시기다. 하지만 여기에는 진정성 있는 일본의 과거사 인식이 필수다. 오늘 이와야 다케시(巖屋毅) 일본 외상 방한은 한국에 대한 일본의 ‘전후 80년, 국교 정상화 60년’ 정책을 보여주는 시작점이다. 한국 정치 상황을 핑계로 적당히 얼버무린다면 누가 새 대통령이 되더라도 한일 관계 개선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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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도쿄 특파원 sangh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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