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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중심 생활 방식 변화와 자동차 기술 발달에 따라 국산 ‘아빠차’가 진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세단이 주류를 이뤘다면 활용도 높은 SUV가 한국에서도 최선호 차량으로 등극했다. 최근에는 SUV 덩치가 더욱 커지고 있고, 픽업트럭까지 아빠차 자리를 넘보면서 그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다.현대자동차 ‘팰리세이드’는 지난 2018년 단숨에 아빠차로 급부상한 차종 가운데 하나다. 이전까지 국내 시장에서 생소했던 대형 SUV가 등장하자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실제로 올해 누적 판매대수 100만대 돌파를 앞뒀다. 중고차 시장에서도 감가가 더뎌 비교적 높은 가격대를 유지하고 있다. 7년 동안 아빠차로 활약해온 팰리세이드가 올해 완전변경으로 더욱 세련된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번에 하이브리드에 9인승까지 추가되며 공간과 효율성 측면을 보완해 매력을 배가시켰다.
지난달 출시된 기아 타스만은 아빠차 틈새시장을 제대로 공략했다. 타보면 혹할 요소로 가득 차있다. SUV 못지않은 실내 공간에 만능 적재공간은 최대 강점이다. 험로를 반기는 특수한 능력도 빼놓을 수 없다. 여기에 장난감으로 자주 접해본 디자인이라 오히려 아이들이 더 좋아한다.
최근 이 부문 쌍두마차로 떠오른 팰리세이드와 타스만을 만나 각기 다른 상품성을 직 경험해봤다. 팰리세이드로 서울에서 경기도 파주 일대 약 150km 구간을 다녀봤고, 타스만은 강원도 오프로드를 주행하며 특성을 파악했다.
팰리세이드 9인승 압도적 공간
타스만 최대 700㎏ 적재 가능
공간은 아빠차 선택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크고 넓을수록 욕심이 난다. 팰리세이드는 국산 SUV 가운데 가장 큰 몸집을 자랑한다. 실내로 들어오면 기다란 휠베이스(2970㎜) 덕분에 광활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전작과 비교하면 휠베이스가 70㎜ 늘었다. 공간을 구성하는 전장(65㎜)·전폭(5㎜)·전고(55㎜)도 키웠다. 차에 오르면 집안 거실처럼 아늑한 공간이 펼쳐진다. 3열도 1세대보다 활용도가 켜졌다. 2열을 앞으로 조금만 당기면 평균 체형의 성인도 앉을 수 있다. 적재 공간은 317ℓ, 3열 시트를 접으면 729ℓ까지 늘어나기 때문에 여행할 때 짐 싣기가 상당히 유리하다. 센터터널 하단에 수납공간도 별도로 마련돼 소소한 물건을 넣을 수 있다.
타스만은 익스트림 기준 전장 5410㎜, 전폭 1930㎜, 전고 1870㎜다. 전고의 경우 X-프로 모델은 1920㎜다. 2열 공간은 중형 SUV와 견줘도 딱히 부족할 게 없다. 주먹 하나 이상이 들어가는 무릎과 머리 공간 모두 실내에서 간단히 움직일 때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탑승 공간 곳곳에는 수납공간을 마련해 실용성을 더했다. 1열 동승석 글로브박스 위 소형 물품을 올려두는 자리 비롯해 2열 시트 쿠션 하단, 차량 측면부 등에 물품을 보관할 수 있다. 짐칸은 이 차의 가장 큰 장점이다. 더구나 승용차처럼 공간이 분리되기 때문에 짐을 외부에 실으면 실내는 항상 쾌적함을 유지할 수 있다. 타스만 적재 용량은 최대 700㎏에 달한다. 3.5톤 무게까지 견인도 가능하다.
대형 SUV 정숙·가속성 수준급
픽업트럭 오프로드 특화 설계
팰리세이드는 하이브리드로 진화하면서 정숙성이 크게 개선됐다. 정숙성은 뛰어난 승차감과 직결된다. 시동을 켜면 전기차처럼 실내는 미동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차체 길이 5미터, 무게 2톤이 넘는 팰리세이드가 순간 세단으로 느껴질 만큼 편안했다. 이런 거구가 엔진 가동 없이도 한참 다니는 것을 보면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성능이 만만치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팰리세이드에 들어간 가솔린 2.5 터보 하이브리드 엔진은 구동과 회생 제동을 담당하는 구동 모터(P2)에 시동과 발전, 구동력 보조 기능을 수행하는 신규 모터(P1)가 추가돼 ‘P1+P2 병렬형 구조’로 작동한다. 특히 EV모드 적극 개입을 유도해 연료 효율성을 극대화한다. 전기모터가 주로 담당하는 저속을 벗어나 중속, 고속 구간에서는 힘이 넘친다. 하이브리드 전용 2.5 터보 엔진과 2개의 전기모터를 활용한 시스템 출력은 무려 334마력에 달한다. 이는 가솔린 2.5 터보 모델(281마력)이나 구형 3.8 가솔린 모델(295마력)을 훌쩍 뛰어는 수치다. 현재 싼타페 하이브리드에 적용된 1.6 터보 하이브리드 시스템 출력과 비교해도 42%나 개선됐다.팰리세이드 하이브리드 특기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구동 모터를 활용한 ‘E-모션 드라이브’ 기술로 승차감을 보완하고 코너를 돌 때 더 기민한 움직임을 만든다. 가령 차가 선회할 때 구동 모터 제어로 무게 중심을 옮겨 조향 응답성과 안정성을 높이는 E-핸들링이 적용됐다. 덕분에 고속도로 램프 구간 등의 선회 주행 상황에서 롤을 억제하고 안정적인 자세로 주행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팰리세이드 하이브리드는 과속방지턱을 넘어가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차체 움직임 없이 안정된 자세를 유지했고, 덕분에 안락한 승차감이 돋보였다. E-라이드 기술이 플래그십 대형 SUV에 어울리는 부드러운 승차감과 안정적인 주행 성능을 확보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는 것이다.
점잖게 운전하다가도 언제든 플래그십 SUV에 기대하는 강력한 주행성능을 경험할 수 있다. 에코 모드도 충분하지만, 과감한 운전을 원한다면 스포츠 드라이브 모드를 선택해 긴장감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파워트레인, 스티어링, 서스펜션뿐 아니라 브레이크도 스포츠 모드에 어울리게 바꿀 수 있다.
타스만은 험로와 도심주행을 모두 아우르는 능력을 지녔다. 특히나 극한의 오프로드 환경까지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 도하 능력과 범피 구간 주행 안정성은 이번 시승에서 가장 인상 깊었다. 깊이 500mm에 이르는 수로를 만난 순간, 일반 SUV였다면 불가능한 상황이었지만 타스만은 주저함 없이 진입했다. 타스만은 도하 전용 흡기구를 펜더 상단에 배치한 덕분에 최대 800mm 깊이까지 시속 7km의 속도로 안정적인 수중 주행이 가능하다. 도하 상황에서도 파워트레인의 숨고르기 없이 전진하는 모습은 정통 픽업트럭으로서 타스만 존재감을 입증하는 순간이었다.
이어진 범피 구간에서는 타스만의 서스펜션 강성과 차체 구조 강도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지면이 울퉁불퉁하게 솟은 코스를 주행하며 차량은 상하로 크게 출렁였지만, 차체는 일관된 균형감을 유지했다. 타스만은 바퀴가 공중에 있을 때조차 미끄러지지 않고, 바닥에 닿는 즉시 부드럽게 접지력을 회복하며 주행을 이어갔다. 기아는 이러한 주행 안정성을 위해 강화 프레임 구조와 함께 멀티링크 서스펜션 시스템, 전자식 LSD(차동기어 제한장치) 등을 조합해 험로 주행에 최적화된 세팅을 적용했다.
‘엑스트렉’은 오프로드에 특화된 일종의 크루즈컨트롤 기능이다. 오르막이든 내리막이든, 운전자는 가속 페달이나 브레이크를 밟지 않아도 일정한 속도로 천천히 주행할 수 있다. 오직 스티어링 휠 조작만으로 차량을 제어하며 복잡한 노면을 통과할 수 있도록 돕는다.시승 중 가장 긴장됐던 순간은 급경사 언덕 구간이었다. 경사도가 높아 전방 시야는 하늘로 가득 찼고, 시트에 몸이 파묻히는 듯한 기울기였다. 하지만 엑스트렉 기능을 활성화하자 차량은 매끄럽고 일정한 속도로 언덕을 타고 넘었다.
험로 주행에서 중요한 또 하나는 ‘시야 확보’다. 타스만은 이를 위해 여러 오프로드 전용 지원 시스템을 탑재했다. 먼저, ‘오프로드 페이지’는 엔진과 변속기 오일 온도, 바퀴 각도, 차체 기울기 등 주요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해 주행 중 기계적 무리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할 수 있다. 또한 그라운드 뷰 모니터는 앞 범퍼나 바퀴 아래에 놓인 장애물까지 파악할 수 있어 비좁거나 위험한 임도, 바위 지형 등에서 매우 유용하다. 실제로 오프로드 코스 중 좁은 산악 임도 진입 시 그라운드 뷰 모니터 덕분에 정교한 주행을 할 수 있었다.
픽업트럭이 투박하다는 편견은 타스만 앞에서는 무의미했다. 프레임 바디 기반의 정통 픽업이지만, 강원도 소양호 인근에서 설악로를 따라 만해마을까지 왕복 약 70km를 달리며 SUV에 가까운 주행 품질을 뽐냈다. 타스만에는 최고출력 281마력, 최대토크 43.0kgf·m를 발휘하는 2.5L 가솔린 터보 엔진이 탑재됐고, 8단 자동변속기가 맞물린다.
고속 주행에서도 차체가 흔들리거나 피칭 현상이 느껴지지 않았고, 가속과 감속이 반복되는 구간에서도 노면과의 접지력이 안정적이었다. 조향 반응은 생각보다 민첩했고, 전반적인 승차감은 부드러웠다. 차량의 크기를 감안하면 도심 주행이나 고속도로에서도 큰 부담 없이 운전할 수 있는 수준이다.
‘픽업트럭=소음·진동·불쾌감’이라는 공식도 타스만 앞에서는 무색하다. 타스만은 차체 구조 보강과 흡차음재 설계를 통해 NVH 차단 능력을 높였다. 노면 소음이나 풍절음은 일부 감지됐지만, 장거리 주행에서 피로감을 유발할 수준은 아니었다. 실제 시승 내내 차내 스피커로 전화 통화가 자연스럽게 이뤄졌고, 음악 청취도 무리 없었다.
최신 하이브리드로 1회 1015km 주행
시속 100km 고속에도 적극 모터 개입
팰리세이드 하이브리드 연비는 14.1km/ℓ다. 연료탱크 용량을 기준으로 단순 계산하면 한번 주유로 최대 1015km를 주행할 수 있다. 실제 경험한 연비도 기대 이상이었다. 시승한 모델은 21인치 타이어에 빌트인캠이 포함된 사양임에도 고속도로와 자동차 전용도로 위주로 주행 조건에서 15~16km/ℓ대의 평균 연비를 기록했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km로 정속 주행을 하다 보면 엔진회전수가 0으로 떨어져 한참 유지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고속주행 환경에서도 EV 모드로 최대 효율을 추구하는 것이다.
회생제동을 통해서도 배터리는 충전된다.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에서는 엔진 시동을 거는 전기모터를 엔진과 직체결하여 더욱 효율을 높였고, 구동에서도 보조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주로 구동과 회생제동을 담당하는 전기모터는 기존 싼타페 하이브리드 등에 적용된 전기모터 대비 출력을 높여서(47.7 kW→54kW) 동력 성능도 개선하고 회생제동량도 늘어났다. 또한, 2개의 모터가 최적의 엔진 효율 구간으로 주행할 수 있도록 보조하므로 연비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
타스만 복합연비는 8.6km/ℓ다. 공도 주행 후 최종 연비는 8.5km/ℓ가 찍혀있었다. 대부분 시속 80km 이상 고속 주행한 결과다. 수치상 효율이 높은 편은 아니지만, 차량의 체급과 퍼포먼스를 감안하면 납득 가능한 수준이다.
타스만은 오프로드 전용 픽업트럭을 뛰어 넘는다. 일상 주행에서도 안락함과 정숙성, 주행의 재미를 겸비한 팔방미인이다. 강인한 외형 속에 감춰진 온화한 승차감은 타스만이 패밀리카와 레저카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는 이유다. 반면, 팰리세이드는 대형 SUV로서의 편안한 주행 성능과 실용성을 제공한다. 대가족 단위의 여행이나 일상적인 주행을 고려한다면 팰리세이드를 최적의 대안으로 꼽을 수 있다.
팰리세이드 하이브리드는 익스클루시브, 프레스티지, 캘리그래피 등 트림별로 4968만∼6326만 원에 판매된다. 타스만 가격은 3750만 원부터 시작한다. 최고 사양인 X-프로는 5240만 원이다.
정진수 기자 brje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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