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에는 세계 경제·국방·이민·무역 시스템이 재설정(리셋)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내년 1월 취임과 함께 거침없이 미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펼칠 전망이어서다. 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미국의 ‘관세 폭탄’에 맞서 자국 통화의 평가절하에 나서며 ‘환율 전쟁’이 벌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5일 발간한 <2025 세계대전망>에서 “내년 초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 세계는 냉전 이후 가장 위험한 상태가 될 것”이라며 이같이 내다봤다. 한국경제신문사가 국내에 독점 출판한 이 책에는 이코노미스트 필진으로 참여한 학자와 정치인, 최고경영자(CEO) 등 세계 최고 전문가의 깊이 있는 통찰이 담겼다.
미국은 중국과의 신냉전을 격하게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대만의 반도체 생산시설도 미국으로 대거 끌고 들어올 가능성이 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견제하고, 트럼프 당선인의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다. 이 과정에서 중국과의 ‘반도체 전쟁’이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 외 다른 국가도 내년엔 무역·환율 전쟁의 포화 속으로 휩쓸릴 것으로 예측된다. 중국 정부가 자국 제조업체의 관세 충격을 줄이기 위해 위안화를 절하하면 다른 국가들도 가격 경쟁력 유지 차원에서 자국 통화 평가 절하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저금리 시대의 귀환…핵무기 경쟁 이어 '디펜스 테크' 급부상
스스로 행동해 목표 달성하는 '에이전틱 AI'가 기업 생산성 높여
‘시험대에 오르는 인공지능(AI)’ ‘저금리 시대로의 복귀’ ‘제3차 핵시대’…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5일 발간한 <2025 세계대전망>에서 제시한 내년의 주요 키워드다. 이코노미스트는 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의 베팅이라고 불리는 AI 투자가 거품으로 끝날지 혹은 본격적인 성과로 이어질지 내년에 판가름날 것으로 예측했다. 또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이 마무리되면서 2010년대식 저금리 시대가 돌아오고, 미국과 중국, 러시아가 핵무기 보유량을 놓고 경쟁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AI·드론 활용한 ‘디펜스 테크’ 부상
이코노미스트는 그간 투자업계와 기업을 중심으로 불어닥친 ‘AI 광풍’이 내년 도마에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2024년부터 2027년까지 세계 AI 데이터센터 지출은 1조4000억달러(약 1980조원)가 넘는다. 연초 대비 세 배로 늘어난 AI칩 선두주자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은 AI에 대한 열광적인 투자자의 수요를 보여준다.
실제 기업 현장에서 AI 사용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기업 중 약 5%만이 AI를 활용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 수개월 내 AI를 도입할 계획이 있다고 밝힌 기업도 7%에 불과했다.
이는 미국 직장인 3분의 1,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78%가 1주일에 한 번 이상 업무에 AI를 쓴다고 답한 것과 상반된다. 실제 직원들은 AI를 활용해 생산성을 높이고 있지만 업무가 늘어나거나 인력이 줄어드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이를 감추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기술만큼이나 기업 문화가 AI 도입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진단했다.
‘에이전틱 AI 시스템’의 등장은 AI 도입 속도를 높일 중요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자율적으로 행동해 목표를 달성하는 에이전틱 AI 시스템은 공급망 최적화, 사이버 보안 취약점 파악 등 기업 활동에 전방위적으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방산업계에서는 AI와 드론을 이용한 ‘디펜스 테크’가 화두로 떠오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드론 등 저비용 고효율 무기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정부 및 대형 방산기업도 방산 스타트업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 주요 원자재 시장 비관적
세계 경제는 인플레이션이 잠잠해지고 본격적인 저금리 시대에 접어들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 중앙은행(Fed), 유럽중앙은행(ECB), 영국은행 등 주요국 중앙은행은 지난해 기준금리 인하 사이클을 시작했으며 내년도에는 그 폭이 더 클 전망이다. 공급망 위기 등 산발적인 위험 요인이 남아 있지만 2010년대 내내 이어진 초저금리 시대가 돌아올 것으로 이코노미스트는 내다봤다.
주요 원자재 시장 전망은 올해에 이어 내년도 비관적이다. 미국 등 중동 외 산유국이 원유 생산량을 늘려 유가는 떨어지고, 중국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구리·철강 등 가격은 낮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원자재 약세 속에서도 오렌지, 커피는 내년에도 상승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세계 공급량의 각각 70%, 40%를 생산하는 브라질이 가뭄·서리 등 이상기후 현상을 겪으면서다. 세계 최대 농축 우라늄 수출국인 러시아에 대한 제재, 원자력발전의 재유행으로 우라늄 품귀 현상도 예상된다.
○ 중국도 핵무기 경쟁
우크라이나·중동 전쟁을 계기로 군축의 시대는 끝나고 ‘3차 핵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냉전시기 미국과 소련이 핵탄두 수만 개를 상대에 겨누며 대치한 1차 핵시대, 인도·파키스탄 등이 자체 핵무장에 나선 2차 핵시대에 이어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이 다시 핵무기 보유량을 놓고 경쟁하는 시기에 접어들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국과 러시아가 상호 간의 핵탄두 보유량을 제한하는 신전략무기감축조약(뉴스타트)은 2026년 2월 만료된다.
3차 핵시대는 미국과 러시아라는 두 강대국에 중국까지 합류한 3자 경쟁 구도로 펼쳐질 전망이다. 러시아와 중국이 긴밀하게 협력하는 데다 이란 등도 핵무기 확보의 문턱까지 와 있는 상태다.
김은정/김인엽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