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더불어민주당이 사상 초유의 ‘감액 예산안’을 통과시킨 가운데 국내 투자자들의 관심 사안이었던 금융투자세 폐지와 가상자산 과세 유예 건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다만 정부가 추진했던 상속·증여세 완화, 배당소득 분리 과세 등 밸류업 세제 개편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아울러 반도체산업 지원을 위한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도 반쪽짜리 법안으로 국회를 통과했다.
이날 국회는 본회의를 열어 국회의장이 앞서 지정한 35개 예산부수법안을 처리했다.
우선 내년 시행 예정이었던 금투세 폐지를 포함한 소득세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당초 민주당은 금투세 시행을 밀어붙였지만 이재명 대표가 지난달 4일 폐지에 동의한 이후 방향을 선회했다. 가상자산 과세도 2년 유예됐다. 이로써 과세 시점은 2027년 1월로 미뤄졌다.
정부의 상속·증여세법 개정안은 부결됐다. 정부는 상속세 최고세율을 50%에서 40%로 낮추고, 20%의 최대주주 할증평가를 없애는 개정을 추진했다. 그러나 야당은 상임위원회 단계부터 ‘부자감세’를 이유로 들며 반대해왔다. 상속세법은 2000년 이후 25년간 세율과 과세표준 등이 유지됐는데 이번에도 개정에 실패한 것이다.
오기형 민주당 의원은 표결 전 반대토론에서 “감세정책을 할 때가 아니다. 3년 동안 국세 수입을 보면 2022년 395조9000만원에서 1년 만에 341조2000억원으로 약 52조원이 감소했다”며 “작년과 올해 역대급 세수 결손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이재명 대표도 중산층의 상속세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상속세 공제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며 “과도하게 높은 (상속)세율을 바꾸지 않고 유지한다면 국부가 유출된 서부 국가들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증시 ‘밸류업’을 위한 조세특례제한법·법인세법 등도 좌초됐다. 당초 정부는 국내 증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배당·자사주 소각을 많이 한 기업들에 대해 5%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고, 이런 기업들에 투자한 주주들도 배당소득 분리과세를 받도록 추진했다. 민주당은 이 같은 혜택이 자산가들에게 몰릴 것이라며 반대 의견을 내보였다.
민주당은 밸류업 도구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을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이강일 민주당 의원은 이날 한국거래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증시가 요동치고 있는데 민주당에서 추진하는 ‘국장 부활 태스크포스(TF)’에서 상법 개정을 통해 부스트업하면 된다”고 입장을 표했다. 민병덕 민주당 의원 역시 “계엄 선포 전에 얘기해왔던 상법 개정 등 민주당의 약속을 지킨다는 기조”라고 말했다
K칩스법은 현행 특례의 일몰 기간을 올해 말에서 3년 연장하는 내용으로만 통과됐다. 여야는 반도체 기업의 시설 투자와 연구개발 투자 관련 세액공제율을 5%포인트 올리기로 합의했지만, 비상계엄 정국에 휘말려 최종적으론 일몰 시기를 미루는 정부안이 국회 문턱을 넘은 것이다.
반도체에 대한 세액공제 확대는 여야와 정부가 모처럼 한목소리를 낸 부문인 만큼 아쉬움이 크다는 평가다. 일몰 연장만을 추진해왔던 정부는 지난달 말 반도체 생태계 지원 강화 방안을 통해 세액공제율 확대와 연구개발(R&D) 시설 투자까지 세액공제 혜택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기획재정위원회 관계자는 “예산과 세법을 같이 처리하다 보니 칩스법은 기존 정부안이 그대로 통과되는 상황이 벌어졌다”면서 “양당 원내대표 협의로 본회의 수정안을 만들어 올릴 수도 있지만 그런 절차를 밟지 못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