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학당한 꼬마, 세계가 사랑한 작가가 되다

5 days ago 12

초등 1학년의 퇴학? 그리고 기네스북!

“토토는 초등학교 1학년이에요.
그런데 퇴학을 당했어요. 겨우 1학년인데 말이에요!
......(중략)
댁의 따님이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다른 학교로 전학시켜 주세요! 정말이지 곤란합니다!”

-『창가의 토토』 중

어린 꼬마 토토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받아쓰기하며 책상 뚜껑을 백 번도 더 열었다 닫았다 하기, 수업 시간 창가에 서서 노래 부르기, 집을 짓고 있는 제비와 대화하기.’
담임 선생님의 화를 머리끝까지 솟구치게 한 토토는 퇴학당하고 만다.

구로야나기 테츠코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구로야나기 테츠코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작가이자 TV 프로그램 사회자로 잘 알려진 ‘구로야나기 테츠코’(黒柳 徹子, 1933년 8월 9일~현재) 의 실제 어린 시절이다. 본인의 이름인 테츠코 대신 ‘토토’로 불리길 원했던 어린 꼬마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학교를 옮기게 된다. 토토는 일본 최초의 대안학교 ‘도모에 초등학교’에서 그녀의 근간이 되는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게 된다.

‘너무 비싼 도시락 반찬 금지.
강당에서 이불 돌돌 말고 낮잠 자기.
소아마비를 가지고 있거나 키가 아주 작은 친구라도 먼저 도와주지 않기.
농사짓는 법 배우기.’

도모에 초등학교는 아이들의 개성과 인격을 존중하고 자유와 평등의 교육을 실천하는 대안학교였다. 도모에 초등학교에서의 경험은 테츠코에게 억눌리지 않는 자유와 테츠코의 독특한 개성을 지켜주었다. 그리고 훗날, 이 기억은 그녀의 인생을 바꾸는 작품으로 이어졌다.

1981년 『창가의 토토』(Totto-chan: The Little Girl at the Window)가 출간되자 일본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며 교육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책은 출간 직후 일본에서만 수백만 부가 팔렸고, 이후 30여 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 2,500만 부 이상 판매, 결국 기네스북에 등재되는 기록을 남겼다.

[좌] <창가의 토토> 김영사 / 출처. 예스24 [우] <그림으로 보는 창가의 토토> 주니어 김영사 / 출처. 예스24

[좌] <창가의 토토> 김영사 / 출처. 예스24 [우] <그림으로 보는 창가의 토토> 주니어 김영사 / 출처. 예스24

‘모두가 똑같다.’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학교 부적응 학생으로 낙인찍혀 퇴학당했던 테츠코에게 ‘넌 사실은 착한 아이란다.’라는 말을 반복해서 해주었던 도모에 초등학교의 교장선생님이 안 계셨더라면 테츠코의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학부모들이 만나면 꼭 빠지지 않는 이야기가 자녀의 같은 반 아이 중 특이한 성향을 보인 친구들의 이야기다. 자화상 그리기를 하는데 죽은 자기 모습을 그린 아이, 좋아하는 빨간색으로 자기 얼굴에 칠하고 빨간 얼굴을 그린 아이, 교실 옆 작은 정원에 매일 혼자 나가 있는 아이, 바퀴벌레를 좋아해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아이. 특이한 아이들과 같은 반에 배정된 것을 한탄하는 학부모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토토가 생각난다.

자기만의 세계를 가지고 골똘히 깊은 생각에 빠진 아이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뿐인데 피해를 주었다며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들은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채 세상을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기도 전에 눈을 감고 말아버린다.

만약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 어떤 재배 방법도 모르는 열매의 씨앗을 틔운다고 가정해 보자. 우리는 그 씨앗을 토마토를 기르듯 똑같이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물을 얼마나 원하는지, 햇빛을 얼마나 견디는지 세심히 살피며, 과습이 되면 말려주고, 햇볕이 지나치게 강하면 그늘로 옮겨줄 것이다. 꺾일까 조심스레 만지고, 어떤 환경에서 가장 건강하게 자라는지 오랜 시간 관찰하며 소중히 지켜볼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을 대하는 우리의 시선은 어떠한가. 아직 어떤 열매를 맺을지 알 수 없는 소중한 아이들을, 똑같은 환경과 잣대에 맞추어 평가하려 든다. 그 과정에서 개성 넘치는 아이는 ‘문제아’로, 기존 질서에 맞지 않는 아이는 ‘퇴학생’으로 불리기도 한다.

‘남들과 똑같아야 한다.’라는 강박에 시달리는 부모들과 부모를 충족시키기 위해 애를 쓰는 아이들에게 『창가의 토토』가 전환점이 되길 바라본다. ‘남들과 똑같아야 하는 것’이 아닌, ‘모두가 똑같다.’라는 이야기를 전해주며 많은 것을 시사한다.

도모에 초등학교는 오늘날 대안학교의 반석이 되었고, 『창가의 토토』는 단순한 아동문학을 넘어 교육 철학의 고전이 되었다. 아이를 문제로 보는 순간, 아이는 문제아가 된다. 그러나 아이를 가능성으로 바라보는 순간, 아이는 기적을 만들어 낸다.

『그림으로 보는 창가의 토토』는 세계적으로 사랑받은 화가 ‘이와사키 치히로’의 따뜻하고 섬세한 수채화가 더해져, 토토의 이야기를 한층 더 풍부하고 감동적으로 빛나게 한다.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긴장과 흥분, 도파민에 취해 있는 우리들에게 나지막이 들릴까 말까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건네는 듯하다. 폭주 기관차처럼 격동적으로 달려가는 세상 속에서 이 책은 잠시 걸음을 늦추고, 아직 어떤 열매를 맺을지 알 수 없는 아이 한 명 한 명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단순하지만, 오래된 진리를 다시 일깨워 준다.

[좌] 이와사키 치히로 [우] '빨간 털모자를 쓴 소녀' / 그림. ⓒ이와사키 치히로, 출처. 치히로 미술관 홈페이지

[좌] 이와사키 치히로 [우] '빨간 털모자를 쓴 소녀' / 그림. ⓒ이와사키 치히로, 출처. 치히로 미술관 홈페이지

『그림으로 보는 창가의 토토』의 작가 구로야나기 테츠코가 진행하는 TV 프로그램 ‘테츠코의 방’이 올해 50주년을 맞이한다. 댁의 따님이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있다며 구로야나기 테츠코를 퇴학시킨 선생님이 아직 살아계신다면 오늘날의 그녀를 보며 어떤 말씀을 하실까.

 애니메이션 <창가의 토토> / 출처. 네이버영화

애니메이션 <창가의 토토> / 출처. 네이버영화

“학교의 따돌림 문제도...
‘모두가 똑같다’라고 배웠다면, 이렇게 심각해지지 않았겠지요.
적어도 여러분은...‘함께 해 나가자’라고 하셨던 고바야시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잊지 말고 이어나가길 바랍니다. 부탁합니다. 그럼 토토도 아주 기뻐할 것입니다.”

–구로야시 테츠코

박효진 길리북스 대표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