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첫 가족여행이 내게 가르쳐 준 것[정경아의 퇴직생활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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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정경아 작가·전 대기업 임원 바야흐로 휴가철이다. 소셜미디어에는 지인들의 여행 사진이 넘쳐나고, 거리에는 커다란 트렁크를 끌고 다니는 이들이 오고 간다. 그런 풍경을 보고 있으면 퇴직 후 나의 첫 가족여행의 기억이 떠오른다. 회사를 떠나고 제일 먼저 하고 싶었던 일 중 하나가 가족여행이었다. 직장인 시절에도 여행은 했지만 늘 뭔가 아쉬웠다. 항상 분주하게 움직였고 가서도 업무 걱정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퇴직하고 나서는 시간만큼은 넉넉하니 가족들과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고 싶었다. 후보지를 추려 가족 대화방에 올려놓고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하지만 반응이 시큰둥했다. 가기로 정한 뒤에도 세부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다들 함흥차사였다. 일정에 관한 대답은 반나절 뒤에나 돌아왔고, 장소에 대한 답변도 한참 후에야 들을 수 있었다. 한껏 들떴던 나의 기분에 초조함이 더해졌다. 우여곡절 끝에 계획은 짰지만, 초반부터 삐걱댈 조짐이 보였다. 아침 비행기라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데도 아이는 전날 밤늦게야 귀가했다. 와서도 짐은 꾸렸는지, 방 안에서 꿈지럭대기만 했다. 혹여 늦잠이라도 자면 어쩌나 싶어 나도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출발하는 날 몸이 천근만근이니 그동안 눌러뒀던 짜증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도착해서도 불편한 상황은 계속됐다. 처음엔 낯선 풍경에 잠시 신나 했지만, 그 즐거움은 오래가지 못했다. 본격적으로 여행을 하자마자 사사건건 부딪치기 시작했다. 식사 장소를 선택하는 것부터 동선을 짜는 일까지 매번 의견이 엇갈렸다. 따지고 보면 지극히 사소한 부분인데도 순순히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결국 여행 둘째 날 사달이 나고 말았다. 숙소를 나서기 전 가족들에게 그날 일정을 말하자 불만이 터져 나왔다. 내가 고른 장소가 별로 내키지 않는다는 거였다. 순간 발끈해서 나도 모르게 날카롭게 쏘아붙였고,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그러다 마주 서 있기조차 힘든 지경이 돼 버렸다. 차라리 거리를 두는 게 낫겠다 싶어 우선은 흩어지기로 했다. 혼자 터벅터벅 다니려니 서운함이 밀려왔다. 여행을 제안한 사람도, 준비한 사람도 나였건만 고맙다는 인사는커녕 모두들 트집만 잡으려는 듯했다. 나는 그저 식구들과 오순도순 정을 나누고 싶었을 뿐인데 왜 내 마음을 몰라주는 걸까. 덕분에 나는 답답함과 야속함에 사로잡혀 그 하루를 보냈다. 낯선 도시를 홀로 걷는 발걸음이 유난히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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