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대표들과 AI 신기술에 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한 명이 이색적인 사업 아이디어를 내놔 현실성에 의문을 제기했더니 다른 한 명이 옆에서 이렇게 거들었다. “기자님, 세상은 결국 이렇게 바뀌는 겁니다.” 순간, 기업가정신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깨닫는 느낌이었다. 불확실성 속에서 과감히 도전해 기존에 없던 혁신을 일으켜 세상을 바꾸는 것.
스무 번이 넘는 탄핵과 계엄, 그리고 건국 이후 첫 현직 대통령 체포라는 막장 내전에 한국이 갇힌 사이 미국 정부의 심장 워싱턴DC는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한 젊은 인사들이 점령했다. 정부효율부 수장인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는 21세기 산업혁명을 미국 맨 앞에서 이끄는 지휘관이다. 그가 재사용발사체 개발 과정에서 수년간 거듭 실패하며 파산 직전까지 몰렸을 때 각계는 그를 무모한 미치광이라고 조롱하기 바빴다. 지금 그의 위상은 보는 그대로, 전 세계 우주와 방위산업 패권을 쥔 혁신의 아이콘이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 과학기술정책을 총괄할 백악관 과학기술정책국(OSTP) 신임 국장 마이클 크라치오스와 AI 수석고문 스리람 크리슈난은 테크 기업과 벤처캐피털(VC) 등을 거친 40세 안팎의 기업가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우주를 두 차례 갔다온 40대 연쇄 창업가 재러드 아이작먼이 이끌게 됐다.
기업가정신이 만능은 아니다. 효율만을 추구하다 보면 분배 악화라는 부작용이 생겨 장기적으론 성장동력이 떨어지게 된다. 새가 양 날개로 날듯 좌우 균형감각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요즘은 상황이 다르다. 과학기술이 문자 그대로 살벌할 정도로 발전하고 통상 환경이 악화될 땐 기업가정신 외에는 리더들의 선택지가 많지 않다.
AI를 구성하는 파라미터가 수천억 개를 넘어 수조 개, 그 이상으로 늘어날 기세다. AI 연산에 필요한 컴퓨팅 파워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AI 로봇을 클라우드와 차세대 통신 네트워크로 연결하면 SF 영화에 나오는 인간 형태의 킬러 로봇 군단이 전장에 쏟아져 나올 수 있다. 우크라이나전에서 이미 우리는 드론이라는 킬러 로봇의 무자비함을 목격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CES 2025’에서 로봇을 ‘원픽’하고 삼성, LG가 거든 건 AI 로봇의 파괴적 잠재력을 마주해서다.
후발주자로서 한국은 AI도 벅찬데 요새 더 버거운 상대가 나타났다. 양자기술이다. 올해는 유엔이 양자역학 탄생 100주년을 맞아 지정한 ‘양자 과학과 기술의 해’다. 1925년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와 에르빈 슈뢰딩거가 양자기술의 수학적 기초를 세운 것을 기점으로 했다. 양자컴의 정보처리 기본 단위인 큐비트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수학 스승’으로 알려진 다비트 힐베르트가 고안한 힐베르트 공간에서 움직인다. 큐비트 숫자 증가는 힐베르트 공간의 확대를 뜻한다. 이는 양자컴 정보 처리량 증가로 이어진다.
양자 얽힘이 주제인 2022년 노벨물리학상 해설을 보면 어지러울 정도로 수학 기호가 가득하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게 슈뢰딩거 파동함수의 기호 ‘프사이(Ψ)’다. 100년 넘게 인고의 시간을 보낸 양자기술이 서서히 인간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최근 구글이 내놓은 양자컴 윌로는 슈퍼컴퓨터로 10자 년 걸리는 계산을 5분 만에 푼다고 한다.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등 다른 빅테크도 양자컴 개발에 진심이다. 양자컴의 원형을 만든 일본과 캐나다의 동향도 심상치 않다. 모든 기술에서 미국을 잡겠다는 중국의 ‘양자 굴기’도 무서울 정도다.
세상은 이렇게 변하고 있다. 혁신 기업가들을 불러 모아 주변에 도열시킨 트럼프의 재집권은 미국을 오래 지배해 온 법조인 출신 정치인들에 대한 근본적인 적대감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숱한 법조인 출신 정치인들이 권력을 잡았으나 사회적 갈등은 늘 극단으로 치달았고 우리는 그 정점을 보고 있다. 법조인은 과거를 바라보는 데 특화된 직업이다. 과거와 현재를 특정한 방향으로 채색하는 데엔 능수능란하지만 미래를 보는 기업가 덕목을 내면화하기는 쉽지 않다. 이제는 기업가정신을 온몸에 두른 리더가 대한민국호의 키를 잡아야 할 때다. 법조인이나 생계형 정치인에게 과도하게 쏠린 우리 시선을, 뇌리에 깊숙하게 자리 잡은 진보라는 단어의 뜻을 바꿀 필요가 있다. 진보는 과학기술로 무장한 기업가들이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