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장원재]돈 걷어 ‘간부 모시는 날’, 공직사회 아직도 이런 폐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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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급 초임 공무원 월급은 각종 수당을 포함해 222만2000원이었다. 월 최저임금보다 불과 16만 원 많은 수준이다. 혼자 살기에도 빠듯한 돈인데 일부 지자체 공무원은 여기서 매달 5만∼10만 원을 팀비로 낸다. 이른바 ‘간부 모시는 날’을 위해서다.

▷간부 모시는 날은 하급 직원들이 사비를 털어 상급자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공직사회 특유의 문화다. 팀마다 순번을 정해 주 1회 과장을 대접하고, 월 1회 국장을 대접하는 식이다. 국과장이 혼자 식사하지 않도록 챙기면서, 매번 돈을 내는 부담도 줄여주기 위해 생긴 관행이라고 한다. 국과장 입장에선 매일 돌아가며 공짜 밥을 대접받는 셈이다. 젊은 공무원 사이에선 “월 200만 원 받는 처지에 월 500만 원도 넘게 받는 국과장 밥을 사야 하나”, “식비가 부담이라 도시락 싸 다니는데 상급자 밥값을 내라니 어이가 없다” 등의 불만이 나온다.

▷최근 많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일부 지자체에는 매주 1, 2회 간부 모시는 날이 남아 있다. 이날이 되면 주로 막내인 팀 총무가 상급자에게 미리 선호 메뉴를 물어 식당을 예약한 후 함께 이동해 식사하고 원하면 커피까지 대접한다. 팀 총무는 상급자의 취향은 물론이고 전날 먹은 메뉴까지 파악하고 참석자를 체크하느라 오전 업무를 제대로 하기 어렵다. 식비는 미리 걷은 팀비에서 내는 경우가 많은데, 하급자 입장에선 돈은 돈대로 쓰고 마음 편히 식사도 못 하니 억울할 만하다. 하지만 매달 순번표까지 만들어 내려오는 데다 공무원 사회에선 ‘점심시간도 업무의 연장’이란 인식이 여전해 다른 일정이 있다며 빠지기도 어렵다.

▷친밀도를 높이기 위해서란 명목으로 마련되는 자리지만 실제 성격은 다르다. 공직사회 특성상 명확한 성과 측정이 쉽지 않다 보니 한 번이라도 더 만나 식사를 하고 친분을 쌓아야 필요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넓게 보면 청탁의 일종으로도 볼 수 있어 국민권익위원회는 올해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공무원 행동강령 위반 여부를 점검할 방침이다.

▷수십 년 동안 이어진 이 관행은 2000년대 들어 공직사회 세대교체가 진행되며 ‘시보떡’(수습 기간이 끝나면 사비로 돌리는 떡)과 함께 대표적 공직사회 악습으로 꼽히게 됐다. 정부도 여러 차례 근절을 약속했다. 현재 중앙부처에선 거의 사라졌지만 지자체의 경우 지난해 조사에선 응답자의 44%, 올해 조사에선 24%가 여전히 ‘모시는 날 관행이 남아 있다’고 답했다. 최근 정부 조사에서 공무원의 91%는 ‘모시는 날 관행이 더 이상 필요 없다’고 했다. 공무원 스스로도 불필요한 관행임을 인정한 만큼 이번에야말로 시대착오적 악습을 뿌리 뽑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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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 논설위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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