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우경임]건보료 개편과 연금 개혁의 ‘평행 이론’

14 hours ago 4

우경임 논설위원

우경임 논설위원
‘탄핵 평행 이론’이 회자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결정 8년 만에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이 진행되고 있다. 탄핵 정국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되고 콜드플레이가 내한 공연을 한다. 씁쓸했던 그 ‘평행 이론’을 다시 떠올린 건 국회가 국민연금 개혁 입법 공청회를 열고, 개정안을 논의하겠다는 뉴스를 보고서다.

2017년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정국에서 2년이나 공전하던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 개편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더 내고 덜 받는’ 연금 개혁 못지않게 모두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사안이었다. 만약 2025년 윤 대통령의 탄핵 정국에서 국민연금 개혁이 성공한다면….

대통령 리더십 공백이 적기일 수도

2015년 1월 28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건보료 부과 체계 개편안 발표 하루를 앞둔 이날, 정부는 갑자기 백지화를 선언했다. 건보료는 직장과 지역 가입자 간 부과 기준이 형평성이 맞지 않아 민원이 연간 7000만 건에 달할 정도였다. 연금·이자 부자인데 피부양자로 등록돼 건보료를 한 푼도 내지 않는 은퇴자가 있는 반면, 전세 살며 트럭을 모는 자영업자는 과중한 부담을 지는 불합리한 사례가 숱했다. 정부는 이를 바로잡기 위해 1년 반 넘게 작업을 해왔던 터였다. 그런데 ‘연말정산 세금 폭탄 파동’으로 민심이 술렁이자, 청와대가 개편안 발표를 보류시킨 것이다.

21대 국회 종료를 4일 앞둔 지난해 5월 25일은 국민연금 개혁의 ‘운명의 날’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이 “여당이 제시한 소득 대체율(받는 돈) 44%를 수용하겠다”고 밝히며 극적 합의가 기대됐다. 보험료율(내는 돈)은 여야가 9%에서 13%로 올리기로 이미 합의한 상태였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채 상병 특검법’ 처리를 위한 정략” “구조개혁이 빠졌다”며 반대했고 윤 대통령은 느닷없이 “22대 국회로 넘기자”고 했다. 결국 연금 개혁은 무산됐다. 4월 총선에서 참패한 정권이 역풍이 뻔한 연금 개혁, 채 상병 특검을 어떡하든 막고 싶은 속내였을 것이다.

건보료 부과 체계 개편과 연금 개혁의 좌초, 둘 다 정권의 안위가 국민의 복리보다 앞섰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통령 탄핵 정국은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지는 계산기가 불능인 시기 아닌가. 건보료 부과 체계 개편이 실제로 이뤄진 것도 2017년 3월이었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인용 직후 국회는 여야 합의로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정부 관계자는 “청와대와 국무총리실 정무적 간섭이 사라지면서 속도가 붙었다”고 했다.

“미룰 수 없는 과제”라는 야당

야당이 협조적이라는 상황도 8년 전과 같다. 1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인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국민연금 개정안 7개를 법안심사 소위원회로 부쳤다. 그러면서 “연금 개혁은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했다. 정권 교체 가능성을 높게 점친다면, 연금 개혁을 털고 가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 반영됐을 것이다. 당 지도부와 교감도 있었다고 한다. 2017년에도 정부가 여야 의견을 절충해 4년에 걸친 단계적인 개편안을 제시하자, 대선 전 이를 확정하고 싶었던 야당은 정부안을 수용했다. 여야 누구도 앞장서고 싶지 않은 숙제였던 만큼 권력 공백이 오히려 동력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2025년 연금 개혁도 그 동력을 얻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대내외적 복합 위기를 일컫는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이 보통 명사처럼 쓰이기 시작했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해야 할 일을 했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 덕분에 ‘퍼펙트 스톰’을 헤쳐 나왔다. 우리는 다시 ‘퍼펙트 스톰’을 마주했다. 지금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는 것, 8년 전을 복기하며 얻을 수 있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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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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