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사라진 전세, 치솟는 월세…주거 사다리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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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칼럼] 사라진 전세, 치솟는 월세…주거 사다리 흔들린다

“전세는 거의 없고, 그나마 있는 월세는 너무 비싸네요.”

서울 중랑구에서 전셋집을 찾던 30대 직장인 A씨. 그는 결국 전세 계약을 포기했다. 눈여겨보던 1000여 가구 규모 아파트 단지에 전세 물건은 단 두 건뿐이었다. 그마저도 몇 달 전과 비교해 가격이 급등해 감당하기 어려웠다. 마지막 선택은 옆 단지에서 보증금 3억원에 매달 200만원 가까운 월세를 내는 반전세 계약이었다.

서울 주택시장에서 A씨의 사례는 일상이 됐다. 서울 아파트 전세 물건이 1년 전에 비해 45%가량 급감해 거의 ‘반토막’ 수준으로 줄어든 탓이다. 성북·노원·관악구 등 중저가 단지가 밀집한 지역의 전세 물량 감소 폭은 1년 새 80%를 웃돈다. 대단지 아파트에 전세 물건이 한 건도 없는 경우도 흔하다. 현장에서 ‘전세 대란’이라는 비명이 터져 나오는 이유다.

[토요칼럼] 사라진 전세, 치솟는 월세…주거 사다리 흔들린다

전세난의 이유는 명백하다. 안 그래도 서울의 신규 입주 물량이 줄어드는 와중에 정부 정책까지 더해져서다. 정부는 서울 전역과 경기 12곳을 토지거래허가구역 등 규제지역으로 묶고 실거주 의무를 강화했다. 여기에 전세보증보험 한도 축소와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 금지 같은 금융 규제까지 더해졌다. 집주인은 목돈을 받는 대신 월세나 반전세로 계약을 전환했다. ‘갭투자’(전세 끼고 매매)를 막기 위해서였지만 결국 전세 공급 부족이라는 역풍이 불어닥쳤다.

급격한 전세의 멸종은 빠르게 월세 시대를 열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1~2월 서울 임대차 시장에서 월세 비중은 70.3%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10건 중 7건이 월세인 셈이다. 전세가 줄고 월세가 늘어도 세입자의 어려움은 여전했다. 월세 역시 공급이 부족해지고 가격 상승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월급만큼을 월세로 내야 하는 집이 흔해졌다. 집을 보지도 못하고 바로 계약해야 하는 일도 빈번해졌다. 집을 험하게 쓸까봐 아이가 있는 집이나 1인 가구 세입자는 받지 않겠다는 집주인도 생겼다. 해외처럼 세입자 면접을 보겠다는 말까지 나왔다. 집 없는 설움이 날로 커졌다.

이럴 바에야 내 집을 사겠다고 나선 실수요자가 늘었다. 수요가 몰리자 중저가 아파트 가격도 오르는 풍선효과가 나타났다. 서울 외곽으로 불리는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 금관구(금천·관악·구로구) 등에서 아파트를 사려고 해도 10억원은 있어야 하는 뉴노멀 시대가 시작됐다. 이래저래 서민만 살기 힘들어진 셈이다.

정부도 임대 시장의 문제를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는 전세 임대 공급을 늘리고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든든전세주택’을 선보이는 등 공공임대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시장의 거대한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국내 전체 주택 중 공공임대 비중(8.8%)은 민간 임대(29.8%)에 크게 못 미친다. 민간 임대 시장의 기능을 회복시키는 정책이 병행돼야 하는 이유다.

민간 임대라고 해서 꼭 임대료가 비싼 것도 아니다. ‘등록 민간임대주택’은 연 5%로 임대료 상승을 제한할 수 있다. 세입자에게 돈을 더 받지 못하게 하는 대신 혜택을 주는 식의 정책을 마련하면 된다. 임대주택이 의무 임대 기간(10년)이 지나도 종합부동산세 합산에서 배제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 임대주택을 바로 매각(분양)해 차익을 남기는 대신 꾸준한 임대 공급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LH가 빌라 등 비아파트를 직접 매입해 공급하는 방식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전세 사기 이후 빌라와 오피스텔에서 전세로 사는 것에 대한 불안이 여전하다. 하지만 전·월세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아파트로 부족한 부분을 채울 비아파트 시장의 신뢰 회복이 필수적이다. 비주택을 주택으로 전환하는 것도 고려해봄 직하다. 수도권 주요 택지지구의 지식산업센터와 상업시설은 몇 년째 공실로 남아 있다. 이런 공간을 사들여 오피스텔 등으로 전환한다면 임대 물량으로 활용할 수 있다.

전세난은 몇몇이 겪는 어려움이 아니다. 청년, 신혼부부 등 선량한 실수요자 모두의 고통이 될 수 있다. 기존의 관성에서 완전히 벗어나 새로운 접근법을 도입해야 하는 이유다. 모든 면에서 완벽한 정책일 필요는 없다. 현장의 요구를 반영한 유연한 시도가 우선이다. 정책의 초점은 실질적인 서민의 주거 안정에 둬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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