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안보·경제상황·美분열
트럼프 2.0 시대 4대 키워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백악관 복귀는 많은 미국인에게 변화의 바람을 예고하고 있다. 물론 다른 이들에게는 태풍처럼 느껴질 수 있다. 태풍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은 알지만 어디에 상륙할지, 그리고 어떤 피해를 줄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확실한 건 어떤 경우든 변화는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우선 중요한 전제는 미국 국민이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는 사실이다. 이 유권자들은 트럼프를 이미 경험했고, 그가 어떤 식으로 향후 4년을 이끌지를 어느 정도 예상하고 투표를 했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 국민의 변화에 대한 열망이고, 그 열망이 기존 질서를 일부 무너뜨린다 해도 그만이라는 생각이 반영돼 있다.
사실 이런 반(反)기득권 정서는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영국, 보츠와나, 인도, 이탈리아, 일본, 독일 등 세계 곳곳에서 변화의 열망이 선거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한국 역시 지난해 집권 여당이 총선에서 패배했다.
이번 미국 대선은 박빙이었으나, 트럼프는 거의 모든 지역과 인구 통계학적 집단에서 절반 이상의 지지를 얻었다. 미국인들은 '경제'와 '이민 정책'이라는 두 가지 주요 영역에서 트럼프의 대대적인 변화의 약속을 환영했다. 외교 정책에서마저도 트럼프에 대한 지지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러한 변화의 열망이 어떻게 구현될지는 아직은 미지수다. 다만 최근까지 이뤄진 인사와 현 경제 상황, 안보, 국내 이슈 등을 토대로 그 방향성은 가늠해볼 수 있다. 이 4가지 요소로 트럼프 2기가 한반도를 비롯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어떤 영향을 줄지 분석해보자.
트럼프의 인사
워싱턴 정계엔 '인사가 곧 정책'이라는 오랜 격언이 있다. 트럼프는 현재 경험이 있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일종의 관습적인 인사를 단행하면서도, 한편으론 상당히 독특한 인물들로 팀을 구성하고 있다. 전자에 해당하는 이른바 '팀 노멀(Team Normal)'은 세 명의 강력한 플로리다 출신 인사들이 주도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던 수지 와일스가 있다. 와일스는 지난해 트럼프 선거 캠페인을 지휘하며, 트럼프 비평가들조차 인정할 만큼 전문적이고 전략적인 방식으로 선거 캠페인을 이끌었다. 때로는 전략적이고 전문적인 면모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트럼프와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그가 맡게 될 백악관 비서실장이라는 중요 직책은 특히나 '충동적인' 트럼프 체제하에서는 더욱 도전적인 직무일 수밖에 없다. 국가 안보 분야에서의 전문성은 부족하지만, 와일스는 정치 전략가로서 트럼프의 충동을 억누르고 행정부에 질서와 규율을 가져다주는 역할을 할 것으로 관측된다.
국무부 장관 지명자인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공화·플로리다)은 신속한 인준이 기대된다. 8년 전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트럼프와 설전을 벌였던 루비오는 트럼프 2기에서 가장 중요한 임명직 중 하나를 맡게 된다. 플로리다를 대표하는 쿠바계 미국인인 루비오는 외교 및 국가 안보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상원 위원회들에 속해 있다.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를 기치로 미국을 다자주의로부터 멀어지게 할 것을 우려하는 이들에게 루비오는 안도감을 줄 수 있는 인물이다. 그는 상원의원 시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지지하며 일본·한국과의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2015년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루비오는 "미국과 한국은 평화와 민주주의 가치 수호에 대한 의지를 공유하고 있다. 우리는 이민 가족과 무역, 그리고 희생의 역사를 통해 연결돼 있다"고 말하며 한미동맹의 깊은 유대를 강조했다.
세 번째 눈여겨볼 인사는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지명된 마이클 왈츠 플로리다주 하원의원이다. 미 하원에서 왈츠는 군사위원회 산하 준비태세 소위원회의 의장을 맡고 있으며, 워싱턴에서 양당 협력이 이뤄진 몇 안 되는 분야 중 하나인 대중국 태스크포스(TF)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왈츠는 '중국 매파'로 분류된다. 그는 미국이 2022년 베이징올림픽을 보이콧할 것을 주장하며 "중국 공산당이 신장웨이우얼 지역에서의 집단 학살, 홍콩 민주주의 권리 탄압, 종교의 자유 억압, 우한 코로나바이러스 발병 은폐와 같은 극악한 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왈츠는 대규모 해군 증강을 촉구하며, 특히 한국에서의 선박 건조를 늘릴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우리는 시간과 싸우고 있다. 중국은 이제 미국보다 200배 이상의 선박 건조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며 "물론 모든 선박이 미국에서 건조되기를 선호하지만, 우리의 가장 큰 적수인 중국과의 경쟁에선 미국, 일본, 한국, 그리고 유럽에서 건조된 선박을 혼합해 레이건 스타일의 증강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트럼프의 국가 안보
주지하듯이 트럼프는 기존의 관례를 깨는 인물이다. 트럼프 1기 당시 미국의 대북 관계는 미국의 전통적인 대북 정책에서 가장 급진적으로 벗어난 사례였다. 트럼프 이전 미국 대통령들은 북한이라는 은둔의 왕국을 고립시키려 했지만, 트럼프는 재임 중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북한 지도자 김정은과 만났다. 아쉽게도 비핵화 합의에는 도달하지 못했으나, 김정은과 총 27통의 서신을 교환하며 이를 '러브레터'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변수는 당시 북한과 지금의 북한은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트럼프 행정부 2기가 마주할 북한은 당시보다 더 강력한 미사일 무기를 보유하고, 러시아와 훨씬 더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특히 김정은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전투병력을 파견한 상황이다.
트럼프 안보팀 내 다수는 동맹을 힘의 승수로 보는 반면, 트럼프 본인은 종종 동맹을 미국을 이용하는 제로섬 게임이라고 말해왔다. 지난해 3월 당시 대선 후보였던 트럼프는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에 주둔 중인 미군의 필요성에 대해 또다시 의문을 제기하며 "우리는 4만명의 군인이 위험한 지역에 있다(실제 숫자는 2만8500명). 이게 말이 되나. 왜 우리가 누군가를 방어해줘야 하나. 매우 부유한 국가인데도 말이다"라고 했다. 당시 타임지는 트럼프의 외교 정책을 '거래 중심의 고립주의(transactional isolationism)'라고 묘사했다.
만약 트럼프가 실제 고립주의 전략을 택한다면 그는 공화당 내 일부 인사들로부터도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상원 역사상 가장 오래 재임하고 있는 미치 매코널 상원의원(공화·켄터키)은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점점 더 높이고 있다. 그는 포린 어페어즈에 기고한 글에서 '우익의 고립주의와 쇠퇴에 대한 유혹'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 매코널은 트럼프의 고립주의를 비판하면서도 그 비판을 조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당파적 공격으로 둔갑시켰으나, 그 메시지는 분명했다. 그는 "나약함의 4년에 대응하는 방식이 고립의 4년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그들이 아닌 트럼프인 점을 잊어선 안 된다. 미 유력 정치전문지인 폴리티코는 트럼프 2.0에 대해 "공화당을 완전히 장악한 그는 8년 전과 달리 정부의 메커니즘에 대해 교활할 정도로 잘 알고 있다"고 평가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특히 한반도에서 트럼프 2.0의 외교 정책은 여전히 불확실성이 크다. 트럼프가 한·미·일 삼국 간의 역사적인 캠프 데이비드 합의문을 깨고 싶어할까? 그렇지 않을 것으로 본다. 군사 훈련, 북한의 사이버 공격에 대한 공동 대응, 공급망 강화, 인권 문제 등은 한·미·일 세 나라를 그 어느 때보다 긴밀히 결속시켰고, 이는 세 나라 모두에 이익이 됐다.
눈여겨볼 것은 트럼프의 언행일치 여부다. 트럼프는 1기 시절 한국이 미군 주둔 비용을 지원하기 위해 매년 5억달러를 더 지출하도록 설득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실제로 한국은 지출을 8.2% 늘리는 데 그쳤다. 이는 트럼프가 주장한 5억달러보다 훨씬 적은 액수였다. 트럼프가 으름장을 놓긴 했으나, 한반도에서 미국의 군사적 입지를 축소하겠다는 그의 위협을 실제로 실행에 옮긴 적은 없었다. 아마 트럼프 2.0 역시 소리만 요란하게 낼 가능성이 있다.
멍청아, 문제는 경제야
트럼프를 승리로 이끈 건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인플레이션이었다. 생활비(특히 주거비), 식료품, 기름값 등을 안정시키는 것은 트럼프 2.0의 중대한 목표가 될 것이다. 바이든의 임기 종료 시점 식료품 물가는 트럼프의 임기 종료 시점보다 22% 올랐다. 바이든 정부에서 봤듯이 인플레이션은 그저 정치인의 수사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경제학자들은 트럼프의 공약 전반이 인플레이션을 완화하기보다 오히려 촉발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더 높은 관세, 대규모 추방, 세금 인하로 인한 부채 증가가 바이든하에서 경험한 것보다 더 큰 인플레이션을 일으킬 것"이라며 "트럼프가 선거 캠페인에서 말한 대로 실행에 옮긴다면 2021년 미국이 겪었던 인플레이션 충격보다 훨씬 더 큰 충격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트럼프 역시 식료품 가격을 낮추겠다고 공언했으나 "이를 실행하는 건 매우 어렵다"고 당선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고백한 바 있다.
트럼프 경제정책의 핵심은 관세다. 관세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라고까지 표현한 트럼프다. 그는 "관세가 높을수록 기업이 미국에 공장을 짓고, 관세를 내지 않기 위해 미국으로 설비를 옮길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법인세를 현 21%에서 15%로 낮춰도 관세가 세수를 메워줄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그는 연방 정부의 세수를 소득세 대신 관세 수입으로 채울 수 있다는 발언도 했다. 물론 이는 불가능하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실현하려면 트럼프 정부가 미국이 수입하는 모든 물품에 70~85%의 높은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한다.
트럼프의 관세정책에 대한 전망은 불투명하다. 입을 열 때마다 그 부과 범위와 세율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언제는 모든 수입품에 1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다가 또 어느 날엔 "수년간 우리를 뜯어온 국가들에 대해 20%를 부과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해 2월엔 중국에서 수입되는 모든 상품에 60%의 관세를 부과하자고 말했고, 이어 10월엔 멕시코에서 생산된 자동차에 대해 2000%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분명한 것은 한국은 미국의 관세정책에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점이다. 올해 무역적자가 560억달러를 넘어서면서 한국은 트럼프 관세정책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고, 그 영향은 상당할 수 있다.
국내 혼란과 분열
트럼프는 취임 전부터 워싱턴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그와 그의 억만장자 고문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초당적으로 합의한 임시지출안 합의안을 거의 무산시킬 뻔했다. 해당 임시지출안은 약 3개월 동안 연방 정부 운영 자금을 지원할 목적이었다.
앞으로 더 많은 혼란이 예상된다. 공화당은 상원은 3표, 하원은 단 1표 차로 민주당에 앞선다. 이 같은 상황에선 나비의 작은 날갯짓마저도 당내 균열을 가져올 수 있다. 게다가 트럼프는 나비가 아니라 들소에 가깝다. 대규모 이민자 추방, 심야시간대 소셜미디어 폭언, 언론에 대한 소송, 정치적 반대파들에 대한 기소 등 트럼프 2.0 시대의 미국은 분명 소란스러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의회, 법원, 그리고 여론에 의해 제약을 받을 것이다. 그 제약이 어느 정도 유지될지에 따라 트럼프의 운명이 결정될 것임은 분명하다. 아마도 가장 좋은 조언은 "최선을 바라되, 최악을 대비하라"는 오래된 격언에 있을 것이다. 태풍을 대비하고, 이 태풍이 작은 소나기에 그치기를 기대하는 게 한국과 미국에 모두 최선이다.
[연규욱 기자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