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기의 유럽 ◆
"유럽은 환경주의의 허상 속에서 살았다. 실제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은 안 줄었는데 유럽에서 새 일자리와 이익, 원자재 주권과 안보가 사라졌고, 세계 최대 단일 시장 파티에서 주인이 아닌 손님으로 전락했다."(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전 폴란드 총리)
단결이 아닌 각자도생병에 사로잡힌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의 현실에 대해 전직 유럽 국가 수장들 사이에서 이 같은 탄식이 쏟아지고 있다.
자국 기업들도 감내하기 어려운 엄격한 환경주의를 앞세워 오히려 유럽 산업 생태계가 훼손됐고, 이를 틈타 중국의 값싼 제품과 자금이 흘러들어 유럽의 경쟁력을 흔들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제부터라도 미국 정부처럼 자국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고립적 무역 조치를 작동해야 한다는 강경 목소리까지 나온다.
2017년부터 작년 말까지 폴란드 총리로 재임한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는 최근 미국 폴리티코에 유럽 경제가 왜 추락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기고를 게재했다. 그는 미국이 중국 경제를 견제하기 위해 관세 장벽 등 수년 전부터 디커플링 프로세스에 착수한 점을 거론하며 "안타깝게도 EU는 아직까지 미국과 유사한 디커플링의 필요성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스웨덴 국민기업인 볼보가 중국 자본에 넘어가고 대부분의 자동화 및 로봇 기업이 유럽이 아닌 중국 업체들로 대체됐다고 일갈했다. 비단 민간 기업뿐 아니라 재정위기를 겪은 그리스의 피레우스항 등 유럽의 대표적 컨테이너 항구 지분이 중국에 귀속된 현실을 통탄했다.
그는 "유럽의 비싼 에너지 가격과 부담스러운 각종 산업 규제, 수입 원자재에 대한 높은 의존도가 유럽의 기후 대응 전략이 가져온 '위선'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앞서 EU 집행위원회의 의뢰로 유럽 경제의 환골탈태를 촉구하는 'EU 경쟁력의 미래 보고서'(일명 드라기 리포트)를 지난 9월 발간한 마리오 드라기 전 이탈리아 총리도 세계 무역질서의 개방성이 퇴조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개방의 상징인 유럽 경제 역시 불가피하게 이 같은 기조를 따를 수밖에 없음을 강조했다. 그는 미국, 중국과 경쟁하기 위해 연간 1000조원이 넘는 대규모 투자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재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