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에 빠져도 삶의 공허함은 결코 채울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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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를 영화로 읊다] 〈90〉 잔치가 끝난 뒤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주인공 마르첼로(오른쪽)는 난잡한 파티가 끝날 무렵 베개 속의 깃털을 꺼내 참석자들에게 뿌린다.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주인공 마르첼로(오른쪽)는 난잡한 파티가 끝날 무렵 베개 속의 깃털을 꺼내 참석자들에게 뿌린다.

한시에선 일찍부터 잔치 뒤의 공허감을 노래해 왔다. 신하들과의 연회가 끝난 뒤 한나라 무제는 “환락이 다하면 슬픈 감정이 많아지니, 젊음의 시간 얼마 안 되니 늙는 걸 어찌할까(歡樂極兮哀情多, 少壯幾時兮奈老何).”(‘秋風辭’)라고 읊은 바 있다. 한나라 말엽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작자 미상의 ‘고시십구수(古詩十九首)’에서도 다음과 같이 잔치 뒤의 소회를 노래했다.

‘고시십구수’ 중 네 번째 수 금일양연회(今日良宴會)

오늘 잔치 왁자지껄하니,
즐거움을 이루 다 말할 수 없네.
쟁을 연주하니 빼어난 소리 퍼져 나가고,
새 노래는 오묘하기가 입신의 경지네.
(중략)
인생이란 이 세상에 기숙하는 것 같아,
갑작스럽기가 거센 바람에 날리는 티끌 같구나.
어찌하여 준마에 채찍질하여,
출세할 중요 자리를 선점하지 않는가?
가난과 천함을 고수하지는 말게나,
실의한 채로 오래도록 고생만 하리니.

今日良宴會(금일양연회),
歡樂難具陳(환락난구진).
彈箏奮逸響(탄쟁분일향),
新聲妙入神(신성묘입신).
(중략)
人生寄一世(인생기일세),
奄忽若飇塵(엄홀약표진).
何不策高足(하불책고족),
先據要路津(선거요로진).
無爲守窮賤(무위수궁천),
轗軻長苦辛(감가장고신).


유행하는 음악이 연주되고 신나는 새 노래가 울려 퍼지는 이 즐거운 날, 시인은 날리는 티끌처럼 허망한 인생의 무상감에 사로잡힌다. 시인은 짐짓 현세에서의 쾌락과 출세를 통해 그 덧없음을 잊자고 하지만, 욕망과 쾌락만 좇는 속물주의라고만 볼 수는 없다. 오히려 현실에서 실의한 처지에 대한 반어로서 삶의 비애를 표현한 것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파티가 끝난 뒤의 짙은 공허함을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달콤한 인생’(1960년)에서도 만날 수 있다. 가십을 위해 유명인들의 신상이나 캐고 다니는 주인공 마르첼로는 파티를 좋아하는 바람둥이 기자다. 친구 스타이너가 주최한 파티에 참석해서 지식인, 예술가들과 어울리던 마르첼로는 예술적 소양은 물론이고 부와 행복한 가정까지 갖춘 스타이너를 선망하게 된다. 하지만 정작 스타이너는 파티 중에도 즐거워 보이지 않고 염세적 생각마저 드러낸다. 스타이너가 갑작스러운 자살로 생을 마감한 뒤 충격을 받은 마르첼로는 삶의 방향성을 잃고 파티의 쾌락에 더욱 탐닉한다. 돈과 성에 대한 노골적 대화가 난무하는 파티의 끝자락, 술에 취한 마르첼로는 베개 속의 깃털을 끄집어내 참석자들에게 뿌린다. 그들이 바라는 달콤한 인생도 이처럼 가볍고 헛된 것임을 나타내는 것처럼.

위 시는 후대 시인들에 의해 여러 차례 모방작이 나왔다. 잔치를 읊은 한시에서 즐거움이 극에 달하면 서글픔이 생긴다는 모티프가 반복된 것은 쾌락이 결코 삶의 공허함을 채워줄 수 없다는 깨달음을 반영한다.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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