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스테이블코인 USDC 발행사 써클(Circle)이 미국에서 은행 설립 인가를 받았습니다. 인가를 내준 곳은 미국 통화감독청(OCC), 미국에서 은행 설립을 승인하고 감독하는 연방 기관입니다.
이번에 승인된 것은 기존 써클이 예금과 대출을 하는 일반 은행으로 전환되는 것이 아니라, ‘Circle National Trust’라는 이름으로 운영될 연방 신탁은행을 설립하는 것입니다. 이 은행의 법적 명칭은 ‘First National Digital Currency Bank, N.A.’입니다.
그렇다면 신탁은행은 일반 은행과 무엇이 다를까요? 그리고 이번 승인이 스테이블코인 산업에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이번 엠블록레터에서는 써클의 신탁은행 설립으로 무엇이 달라지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왜 스테이블코인 회사가 은행을 세웠을까?
스테이블코인은 가격이 달러와 거의 같도록 설계된 디지털 자산입니다. 쉽게 말해 ‘디지털 달러’인 셈인데요. 암호화폐 거래뿐 아니라 해외 송금과 결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글로벌 금융회사들도 차세대 결제 수단으로 주목하고 있습니다.
써클이 발행하는 USDC는 테더(USDT)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으로, 거래소는 물론 다양한 블록체인 서비스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번에 설립 승인을 받은 신탁은행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은행과는 다릅니다. 두 은행의 역할을 비교하면 이렇습니다.
일반 은행: 고객의 예금을 받아 대출을 해주고, 그 이자 차이로 수익을 냅니다. 신탁은행: 고객의 자산을 맡아 안전하게 보관하고 관리하는 일을 합니다. 이번에 써클이 받은 인가는 대출 업무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 한정된 형태의 인가입니다.즉, 이번 승인의 핵심은 써클이 예금이나 대출 사업을 시작한다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자산을 연방 정부의 감독 아래에서 직접 보관·관리할 수 있는 금융 인프라를 갖추게 됐다는 점입니다.
‘디지털 금고’사업부터 시작한다
신탁은행이 문을 열면 가장 먼저 시작하는 것은 디지털자산 수탁(Custody) 사업입니다.
디지털자산은 은행 계좌처럼 비밀번호를 재설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개인키(Private Key)’라는 정보를 통해 소유권을 증명합니다. 개인키를 잃어버리면 자산을 되찾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은행이나 자산운용사 같은 기관들은 직접 보관하기보다 전문 수탁기관에 맡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쉽게 말하면 은행이 고객의 귀중품을 금고에 보관해 주는 것처럼, 디지털자산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관리해 주는 서비스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다만 이번에는 그 금고가 미국 연방 은행 규제 안에서 운영된다는 점이 다릅니다.
초기에는 써클과 관계사가 보유한 디지털자산을 중심으로 운영될 예정이며, 앞으로는 은행 등 일부 기관 고객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확대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개인 투자자를 위한 서비스라기보다, 기관들이 디지털자산을 보다 안전하게 다룰 수 있도록 돕는 기반 시설에 가까운 사업입니다.
USDC 준비금 관리는 어떻게 달라질까?
USDC는 1USDC가 발행될 때마다 그에 맞는 달러 등 안전자산을 준비금으로 보유하는 구조입니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100달러를 맡기고 100USDC를 발행받았다면, 써클은 그 100달러에 해당하는 자산을 준비금으로 보관해야 합니다. 이 담보 자산이 있어야 언제든지 USDC를 다시 달러로 교환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써클은 실제 자산 보관은 미국 대형 수탁은행인 BNY멜론, 운용은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 등 기존 금융기관과 협력하는 방식으로 준비금을 관리해 왔습니다.
이번 신탁은행 설립으로 당장 이 구조가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써클은 향후 신탁은행을 통해 준비금 관리 업무를 직접 수행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 계획이 실현되면 USDC의 준비금 관리가 미국 통화감독청의 직접 감독 아래 들어가게 되는 셈입니다.
물론 그렇게 되더라도 기존 금융기관과의 협력이 모두 끝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자산 보관과 운용은 앞으로도 역할을 나눠 운영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이번 승인이 당장 일반 사용자가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내일 갑자기 USDC를 사용하는 방식이 달라지거나, 새로운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이번 사례는 스테이블코인 기업의 역할이 점점 제도권 금융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지금까지 스테이블코인 기업의 경쟁에서는 얼마나 많이 발행되고, 얼마나 다양한 서비스에서 사용되는지가 중요했습니다. 앞으로는 자산을 얼마나 안전하게 관리하는지, 기관이 신뢰할 수 있는 금융 인프라를 제공하는지, 규제를 얼마나 충실하게 준수하는지도 중요한 경쟁력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국내에서도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논의가 이어지고 있고, 은행권도 관련 준비에 나서고 있는데요. 스테이블코인 사업에서 ‘규제 안에서 얼마나 신뢰를 쌓느냐’가 핵심 경쟁력이 되고 있다는 점은 국내 논의에서도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결국 이번 써클의 신탁은행 설립은 스테이블코인이 단순한 암호화폐를 넘어 기존 금융 시스템 안으로 조금씩 들어가고 있다는 흐름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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