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어를 왜 여기에…" 명동 찾은 외국인들 '충격 실상'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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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째 물품 보관함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일본인 모녀 관광객, 신발가게에 놓여있는 물품 보관 신청서 /사진=박수빈 인턴기자

5분째 물품 보관함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일본인 모녀 관광객, 신발가게에 놓여있는 물품 보관 신청서 /사진=박수빈 인턴기자

18일 오후 1시 반, 명동역 신발가게엔 6개의 캐리어가 맡겨져 있었다. '슈마커' 명동역점은 가게 홍보를 위해 고객들의 캐리어를 무료로 보관하기 시작했다. 슈마커 종업원 A씨는 "하루에 많으면 20명이 캐리어를 맡기고 간다"고 말했다.

왜 외국인 관광객들은 지하철 사물함을 이용하지 않고 신발가게에 들리는 걸까.

같은 날 오전 9시 명동역. 초등학생 자녀들과 함께 한국 여행을 온 멘디 씨(여, 40대)는 "지하철 사물함을 이용하려면 앱을 깔아야 해서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하철 사물함에는 키오스크도, 카드 리더기도 없어 현장에서 짐을 맡기고 결제하는 게 불가능했다. 사물함 칸마다 비밀번호를 누르는 도어락이 달려있을 뿐이다. 멘디 씨는 "앱을 설치하는 게 불편하고 거부감이 든다"며 지하철 사물함을 이용한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앱 설치에 성공하더라도 사용 및 결제라는 다음 관문이 외국인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캐리어 2개를 끌고 온 일본인 모녀는 10번 출구 물품 보관함 앞에서 5분 동안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었다. 딸 B씨(20대)는 해당 앱을 설치하긴 했으나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했다. B씨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며 중국어로 표시된 화면을 기자에게 보여줬다. 앱 이용 언어를 일본어로 바꾸지 못한 것이다.

끝내 모녀는 시간이 촉박하다며 물품 보관함 맞은편에 있는 서울교통공사에서 운영하는 유인 물품 보관소로 달려갔다. 유인 물품 보관소는 무인 물품 보관함보다 평일 이용료가 적게는 800원 많게는 1600원 차이가 난다.

서울교통공사가 손쉬운 지하철 물품 보관함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이용 시스템을 오프라인 방식에서 앱을 통한 온라인 시스템으로 바꿨으나, 이용객들은 정작 불편함을 겪고 있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들은 관련 앱을 설치하는 것부터 낯설어했다. 편리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시스템이 역설적으로 물품 보관함 서비스 이용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11월부터 1~9호선의 지하철 물품 보관함을 이용하기 위해선 '또타라커'라는 앱을 설치해야 한다. 서울교통공사는 1~9호선 269역 안의 물품 보관함을 모두 앱 시스템으로 바꿨다. 앱을 설치한 뒤, 원하는 역사의 물품 보관함을 선택한 후, 온라인 결제까지 이뤄져야 사물함을 사용할 수 있다. 네이버 페이 등 간편 결제에 가입하지 않았거나 온라인으로 카드 등록을 하지 않았다면, 해당 앱을 이용할 수 없다.

키오스크와 카드 리더기가 있는 백화점 안에 있는 물품 보관함 이용 현황 /사진=박수빈 인턴기자

키오스크와 카드 리더기가 있는 백화점 안에 있는 물품 보관함 이용 현황 /사진=박수빈 인턴기자

외국인 관광객들은 공공 서비스가 아닌 백화점 물품 보관함 등 사설 서비스를 이용했다. 명동역 물품 보관함 이용률은 저조했다. 당일 오전 9시 20분, 126개의 사물함 중에서 단 4개의 사물함만이 사용되고 있었다. 3.17%의 이용률이다.

반면, 롯데 영플라자 명동점 안에 있는 물품 보관함 이용률은 25%로 앞선 명동역보다 높았다. 32개 사물함 중에서 8개 사물함이 사용 중이었다. 해당 물품 보관함에는 키오스크와 카드 리더기가 있어 앱을 다운받지 않아도 되는 방식이었다.

앱 사용이 진입 장벽을 높였지만, 관리 측면에서는 순기능을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지하철 물품 관리인 C씨는 "음식물 쓰레기 등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앱으로 시스템이 바뀌면서 사물함 내 쓰레기가 현저히 줄었다"고 전했다.

서울교통공사는 물품 보관함 시스템 과도기라고 보고 있다. 서울교통공사 측은 "초기에 불편함이 있을 수 있지만, 새로운 방식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안전성 및 고객 편의 관련해서는 지금 방식이 더 효과적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앱으로 결제하면 카드 추적이 가능해 사물함 이용자를 확인할 수도 있다. 공사 관계자는 "그간 지하철 사물함이 보이스피싱, 마약 전달 등 범죄 이용에 악용된 측면을 해결하고 고객 편리성을 높이기 위해 앱 시스템으로 바꿨다"고 설명했다.

한산한 명동역 물품 보관소 /사진=박수빈 인턴기자

한산한 명동역 물품 보관소 /사진=박수빈 인턴기자

전문가는 내국인만 고려한 정책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신학승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한국의 경우 내국인 위주로 관광 서비스 정책을 기획하고 시행하는 경우가 많다"며 "2000만명 가까이 외국인 관광객들이 오는 가운데 서울이 글로벌 관광지로 더욱 성장하려면 외국인과 내국인 둘을 세밀하게 고려해 정책을 다룰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서울교통공사는 디지털 격차 해소를 위해 '또타라커' 앱 이용 방법 안내를 홍보할 예정이다. 유튜브 등 온라인에서 안내 동영상을 제작하거나 물품 보관함 옆에 사용 방식 안내 배너를 세울 계획이다. 앱 안에서 사용 방법을 알 수 있도록 동영상도 추가할 예정이다.

현재는 앱 사용 방식에 대한 설명이 앱에 나와 있지 않다. 물품 보관함 안내 동영상은 서울교통공사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한국어로만 설명 들을 수 있다. 오프라인에서는 사용 설명을 물품 보관함 문에 부착된 사용 방식 안내 스티커로 확인할 수 있다.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홍보 안내 동영상은 제작 중이며 출고 날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박수빈 한경닷컴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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