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장을 보면 우리가 익숙했던 투자 환경이 정말 빠르게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금리가 낮고, 세계화가 물가를 눌러주고, 중앙은행은 위기 때마다 돈을 풀어 시장을 달래주던 시절. 그래서 성장주든 채권이든 부동산이든, 결국 시간이 지나면 웬만한 자산이 함께 오르던 것이 1980년대 이후 지난 40여년의 모습이었습니다.
이제 그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적어도 월스트리트의 분석은 그렇습니다. 돈줄이 마른다는 뜻은 아닙니다. AI 주도권과 패권을 둘러싼 미중 경쟁, 지정학 분열과 에너지 안보, 각국의 '자강(自强)' 정책 속에서 정부는 앞으로도 재정을 더 쓸 것이고 AI와 인프라, 방산, 에너지 투자는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끝나는 것은 저렴한 돈이 모든 자산을 무차별적으로 밀어올리던 '쉬운 돈'의 시대입니다.
워시가 시장에게 "이제 알아서 하라"
이번주 이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은 케빈 워시 신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의 데뷔전이었습니다. FOMC 위원 절반이 연내 금리 인상을 예상했고, 워시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물가 안정'이란 말을 12번 반복했습니다. 성명문과 점도표가 매파적으로 나오면 기자회견에선 놀란 시장을 좀 달래주곤 했던 전임 Fed 의장 '친절한 파월씨'와 180도 다른 모습이었지요. 제프리 건들락 더블라인캐피털 CEO는 "시장이 기대했던 '이지 머니(easy money)' 의장이 아니다"라고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워시의 진짜 메시지는 금리 인상이 아닙니다. 사실 워시는 과거 발언에서도, 이번 기자회견에서도 전통적인 의미의 '매파'라고 확정해 판단할 만한 여지를 별로 주지 않았습니다. 그가 이전에 주장한 처방은 '대차대조표를 줄여서 인플레이션의 근본 원인을 없애고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이번에도 "주택시장을 제외하면 금융 여건이 긴축적이지 않다" "2% 물가 목표를 반드시 달성할 것" 같은 매파적인 발언을 했지만, 동시에 "지금의 (높은 인플레이션) 데이터는 수집 방식이 낡아서 믿을 수 없다" "점도표는 언제든지 지우개로 지우면 되는 것" 같은 말도 했습니다. 즉 워시의 말만 보면 그가 매파인지 비둘기파인지, 다음 방향이 금리 인상인지 동결인지 인하인지 알 수 있는 단서는 거의 없었습니다. 본인이 직접 선언한 것처럼 "(통화정책의 방향에 대해) 나 개인의 전망을 제시하는 것을 자제"했기 때문입니다.
대신 그가 목표한 메시지는 따로 있었습니다. “시장은 데이터에 대한 Fed의 반응이 아니라, 경제 데이터에 반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경제 지표에 대해 Fed가 어떻게 생각할지, 금리를 내릴지 올릴지, Fed 인사들이 뭐라고 할지만 쳐다보지 말고, 경제 지표 그 자체를 보고 스스로 가격을 매기라는 것입니다. 못캐피털의 마이클 크레이머 설립자는 "시장에게 '이제 너희가 알아서 해야 한다(You're on your own)'고 말한 셈"이라고 했습니다.
양적완화(QE)가 시작된 이래 오랫동안 투자자들은 이른바 ‘Fed 풋’에 익숙했습니다. 주식시장이 크게 흔들리면 Fed가 금리 인하 힌트를 주거나, 유동성을 공급해 시장을 받쳐줄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대부분 시장이 원하는 대로 됐습니다. 그런데 워시는 그 고리를 끊고 안전판을 치우겠다는 것입니다. 시장은 중앙은행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중앙은행은 그런 시장을 달래며 끌고 가던 방식에서, 시장이 데이터 그 자체를 가격에 반영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워시는 그래서 데이터 수집 방식, 커뮤니케이션 방식, 인플레이션 프레임워크 등을 다 뜯어고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Fed만 바라보던 시장을 '홀로서기' 시키려면 보다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를 주고, AI가 생산성과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최대한 측정해서 알려주고, Fed로부터 너무 많은 메시지가 나가지 않도록 커뮤니케이션을 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개혁이 성공할지 여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미국 정부는 더 많은 부채를 찍어내야 하는데 Fed가 대차대조표를 줄이겠다고 한다면 재정에 종속된 중앙은행이 과연 뜻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다만 핵심은 Fed 의장이 '이제 친절하게 달래주고 돈 풀어주던 중앙은행은 없다'라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것입니다.
투자 패러다임의 구조적 변화
골드만삭스는 이렇게 쉬운 돈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것을 더 큰 투자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설명했습니다. 저물가·저금리·세계화의 투자 황금기가 끝나고, 이제 ‘포스트모던 사이클’로 들어가고 있다는 진단입니다.
1980년대 이후 인플레이션 하락과 급물살을 탄 세계화, 규제 완화, 감세 등은 비용을 낮추고 기업 이익을 키웠습니다. 여기에 낮은 금리는 밸류에이션도 계속 밀어올렸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양적완화와 제로금리가 미국 빅테크와 성장주의 전성기를 만들었습니다. 전 세계적인 저성장·저물가 환경에서 그나마 가장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높은 성장을 구가한 것이 미국 플랫폼 기업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초저금리는 이 기업들의 밸류에이션을 더 팽창시켰습니다.
지금은 모든 조건이 달라졌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인플레이션 충격은 실질금리를 끌어올렸고, 정부 부채는 크게 늘었습니다. 관세와 지역화로 세계화가 후퇴하면서 기업 비용과 물가가 뛰었습니다. 지정학적 긴장은 방위비와 에너지 안보, 공급망 재편 투자를 촉진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AI 혁명입니다. 데이터센터, 반도체, 전력망, 네트워크 등 물리적 인프라에 전례 없는 규모의 자본지출 수요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 변화는 산업 구조와 주식시장의 주도주도 바꿔놓고 있습니다.
정부와 기업이 더 많은 설비투자를 하려면 결국 더 많은 자본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자본비용과 물가, 금리는 계속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제 기업들이 높은 밸류에이션을 정당화하려면 성장 스토리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실제 이익 성장과 현금흐름을 입증하고, 미래 실적 전망도 꾸준히 상향되어야 합니다. 요즘 시장에서 AI 인프라와 제조업, 방산, 에너지 등 각종 투자로 수혜를 보는 섹터만 계속 주가가 강한 이유입니다.
결국 ‘쉬운 돈의 끝’은 ‘돈이 더 선별적으로 까다롭게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골드만삭스는 AI 하드웨어, 전력과 에너지, 방산, 인프라 등 4대 핵심 테마를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꾸려야 한다고 권합니다.
영상에서는 워시 Fed 의장의 메시지에 대한 보다 자세한 분석, 2021년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돌아선 초과 유동성의 의미, 그리고 골드만삭스가 말하는 ‘포스트모던 사이클’에 대해 보다 자세히 짚어봤습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투자자들이 자산을 평가할 때 중요한 질문은 무엇인지도 함께 정리했습니다.
뉴욕=빈난새 특파원 binthe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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