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제적 구조조정을 위해 기업회생을 신청한다는 건 언뜻 보면 어불성설이다. 회생 신청은 ‘도저히 빚을 갚을 수 없으니 채무를 조정해달라’는 부도 위기 기업의 요청이다. 당연히 도덕적 해이 논란이 뒤따른다. 채권단은 채무자가 빚을 갚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꼼꼼히 들여다본다. 이런 사회 분위기상 기업들은 버티고 버티다가 쓰러질 지경이 돼서야 법원 문을 두드린다. 유동성 위기가 오지 않았는데도 법정관리를 신청한 홈플러스와 MBK파트너스의 ‘선제적인 결단’이 아무리 좋은 의도였다고 해도 곧이곧대로 전달되기 어려운 이유다.
모든 게 전례가 없던 일이기도 하다. 금융당국과의 사전 교감도 없었고, 채권단에 미리 알리지도 않았다. 홈플러스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금융그룹도 뉴스로 소식을 접했다고 한다. MBK는 스스로의 경영 실패를 채권단에 떠넘기려 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홈플러스 전단채 사기 발행 의혹은 MBK를 옥좼다. 금융당국과 검찰은 일방적으로 몰아쳤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3월 홈플러스 전단채 발행 관련 불공정거래 조사에 착수한 이후 “MBK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몰아붙였다. 이어 “해명과 다른 정황”과 “유의미한 사실관계”를 확인했다고 공표했다. 금감원의 바통을 이어받은 검찰이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나서면서 동북아시아 최대 사모펀드(PEF)인 MBK는 순식간에 범죄 집단 취급을 받고 있다.
MBK가 범법 행위를 저질렀다면 응당 처벌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유무죄를 따지기에 앞서 MBK가 홈플러스를 살려내야 하는 주체라는 점에서 걱정이 앞선다. MBK를 때리면 때릴수록 홈플러스의 회생절차는 점점 험난해지는 딜레마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채권단은 김병주 MBK 회장의 사재 출연을 요구하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궁지에 몰린 MBK는 한 발짝을 움직이기도 어렵다. 검찰 수사 와중에 사재 출연에 응한다는 건 사기 혐의를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MBK와 채권단 협상이 평행선을 달리면 공멸밖에 없다. 피해는 2만 명에 달하는 임직원과 7000여 개에 이르는 임차인, 국민연금에 돌아간다. 사기 혐의에 불을 붙인 홈플러스의 마지막(2월 25일) 전단채 발행 규모는 820억원이지만 회생채권은 약 2조7000억원이다.
과도한 차입을 일으켜 홈플러스에 전이시킨 MBK의 경영권 인수 방식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렇다고 사모펀드를 향한 대중적 반감에 편승하려는 듯한 일방적인 여론몰이는 홈플러스 회생을 꼬이게 만들 뿐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홈플러스의 생존 문제가 첫 과제가 될 수 있다. ‘사정의 칼날’을 앞세우기 전에 모두의 이익을 위해선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