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크립토 갈라파고스' 자처하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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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크립토 갈라파고스' 자처하는 한국

지난해 1월 12일. 미국에서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상장된 직후 한국에서는 대혼란이 벌어졌다. 금융당국이 갑작스럽게 국내 투자자의 비트코인 현물 ETF 투자 불가 방침을 세웠다는 사실이 한국경제신문 보도로 알려지면서다. 정부가 선진 자본시장의 급격한 변화에 대비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한국에서는 무엇이 변했을까. 여전히 비트코인 현물 ETF 상장은커녕 투자도 불가능하다. 지난 6년간 금융위원회 내 한시 조직으로 있던 암호화폐 담당 조직이 지난해에야 정규 조직으로 격상됐을 뿐이다. 전문가가 참여하는 가상자산위원회가 꾸려졌지만, 암호화폐 시장 규제안을 마련하는 데 더 관심을 두고 있다. 전날 가상자산위원회는 암호화폐도 주식처럼 사업보고서 같은 정기 공시를 하는 규제안을 검토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사이 미국에서는 연기금이 비트코인 현물 ETF를 포트폴리오에 담을 정도로 비트코인의 존재감이 커졌다. 지난해 미국 증시에 상장한 700여 개 ETF 가운데 투자금을 가장 많이 끌어모은 ETF는 단연 비트코인 현물 ETF였다. 전체 12종의 비트코인 현물 ETF 자산 규모만 160조원을 돌파했다. SK하이닉스 시가총액(152조원)을 뛰어넘는다. 비트코인 현물 ETF뿐만이 아니다. 비트코인 현물 ETF를 기초 자산으로 하는 파생상품까지 나왔다. 21세기 인간이 만든 전례 없는 투자 자산을 두고 기회를 놓치지 않는 선진 자본시장과 글로벌 금융사의 움직임은 놀라울 뿐이다.

자본이 몰리는 곳에는 언제나 기술 혁신과 아이디어가 넘쳐난다. 전 세계 유니콘 기업 1407개 중 237개(17%)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관련 스타트업이다. 글로벌 유니콘 5개 중 1개가 블록체인 및 암호화폐 시장에서 기회를 찾고 있다는 얘기다.

분야도 다양하다. 기업가치가 80억달러인 미국 파이어블록스는 암호화폐 등 디지털 자산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보관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스라엘 스타크웨어는 첨단 암호화 기술을 활용해 블록체인이 더 빠르고 저렴하게 거래를 처리할 수 있는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두나무와 빗썸 등 암호화폐 거래소 운영 기업만 포함됐을 뿐이다. 정부가 암호화폐 거래에 집중해 규제하다 보니 국내 기업은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도전할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 암호화폐와 디지털 자산 시장은 더욱 빠르게 확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라도 시장 경쟁력을 키우는 쪽으로 정책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크립토 갈라파고스’를 자처하다가는 기술 혁신과 투자 기회를 모두 잃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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