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빨라도 너무 빠른 스테이블 코인의 공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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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빨라도 너무 빠른 스테이블 코인의 공습

사실상 디지털 달러와 다름없는 달러 연동 스테이블 코인이 한국 외환시장과 거시경제의 복병으로 떠오를 수 있다고 경고한 기획 시리즈를 시작한 것이 지난해 10월이었다. 그때만 해도 이렇게 빨리 스테이블 코인이 일상을 파고들 줄은 몰랐다. 더구나 금융 규제가 강한 한국에서 불과 반년 만에 실제 결제나 임금 지급 수단으로 쓰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본지 5월 10일자 A1, 3면 참조

돈은 언제나 편하고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흐른다. 규제를 우회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시장은 결국 가장 효율적인 길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달러 기반 스테이블 코인이 원화를 대체한다는 것은 과장된 기우라고 말한다. 한국인의 원화에 대한 신뢰가 강하고 국내 금융 시스템 역시 잘 갖춰져 있다는 이유에서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스테이블 코인이 금융 거래의 일부라도 차지한다면 그 파장은 결코 작지 않다. 지난해 국내 카드사의 해외 이용금액(개인)은 19조4000억원이다. 예컨대 스테이블 코인 카드가 이 시장을 5%만 가져가도 1조원 규모다. 이는 롯데카드의 해외 이용금액과 맞먹는 수치다.

외환시장도 예외가 아니다. 올해 1분기 기준 한국 외환시장의 하루 거래액은 728억달러다. 스테이블 코인 거래가 이 가운데 1%만 차지해도 7억2800만달러(약 1조원)에 달한다. 외환시장에서는 거래량이 1~2%만 급격히 변해도 환율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미 달러 스테이블 코인 발행 규모(약 2400억달러)는 미국 광의통화(M2)의 1%를 차지할 정도로 급증했다. 입출금, 결제, 송금 등 모든 거래를 포함한 거래액은 지난해 5조6600억달러로, 전년 대비 54.2% 급증했다. 이런 속도라면 올해는 8조달러를 넘을 수 있다. 우리 돈으로는 1경원이 넘는 규모다.

해외에선 급격한 변화가 이뤄지고 있지만, 한국은 딴판이다. 한국의 대응 속도는 여전히 돌다리를 두드리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해외에서는 제도가 갖춰지기도 전에 민간 기업들이 뛰어드는 반면, 한국은 관(官)이 나서지 않으면 민간에서 움직이기 어려운 구조다. 민간의 실험을 폭넓게 허용하고 사후 감독하는 선진 금융시장과 달리 한국 금융시장에서는 사전에 허용된 것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대응 한 번 못하고 국내 시장을 빼앗길까봐 걱정되는 이유다. 상상력과 도전 정신으로는 뒤지지 않는 국내 기업과 인재들이 세계적으로 유망한 시장에서 도전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면 그보다 더 뼈아픈 일도 없을 것이다. 이제는 일단 뛰면서 방향을 찾을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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