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직업능력硏 보고서
초등학생은 방과후 교육비
1% 늘어나면 0.045명 감소
매년 늘어나는 사교육비
지난해 27조로 사상최대
두 살배기 딸을 둔 공무원 신 모씨(33)는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는 문제로 고민이 많다. 영어유치원에 보내고 싶지만 일반유치원보다 10배 넘게 비싸기 때문이다. 이씨는 “지금부터 입시 시작이라고 생각하면 나중에 들어갈 학원비와 영어유치원비는 같다더라”면서도 “둘째가 생긴다면 비용을 2배로 감당하긴 어려울 거 같다”고 말했다.
과도한 사교육비가 저출생을 부추기는 원인으로 지목되는 가운데 학생들의 사교육비가 1% 오를 때 합계출산율은 0.02명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정권마다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입시제도, 대학 서열주의 등과 얽히고설켜 사실상 ‘백약이 무효’로 전락하면서 보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발표한 ‘지방분산과 균형발전을 통한 인구 저출산 대응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고등학생 사교육비 지출이 1% 늘어날 때 그 지역 합계출산율은 평균 0.019명 감소했다. 중학생의 경우 사교육비 지출이 1% 증가하면 합계출산율은 0.022명 줄었다. 2022년 기준 224개 전국 시군구별 합계출산율과 초·중·고교 사교육비 실태조사, 교육부 학교 통계 자료 등을 종합 분석한 결과다.
초등학생의 경우 사교육비가 아닌 방과 후 교육비 지출이 1% 늘어나면 합계출산율이 0.045명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체능 중심의 초등학생 사교육은 방과 후 학교에 어느 정도 포함되지만, 중·고등학생의 경우 방과 후 학교로 대체하기 어려운 입시 중심 사교육 때문으로 해석된다. 각 지역 공교육비 지출과 합계출산율 간 상관성은 없었다.
실제로 사교육비 지출이 높은 지역의 합계출산율은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낮게 나타나는 경향을 보였다. 통계청과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합계출산율이 0.55명으로 전국 17개 시도 중 가장 낮았던 서울은 일반 고교생 월평균 사교육비 지출이 100만원으로 가장 높았다. 반면 0.97명으로 전국에서 합계출산율이 가장 높았던 전남은 고교생 사교육비가 40만6000원으로 가장 낮았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사회의 사교육 경쟁과 지출 정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재원은 한정돼 있으니 교육을 더 많이 시키기 위해 자녀를 줄이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의대나 명문대에 가지 못하면 좋은 위치에서 살기 어렵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일종의 군비 경쟁”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공교육을 강화해 사교육비를 줄이겠다며 사교육 카르텔 단속과 늘봄학교 정책 등에 나서고 있지만 사교육비는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고등학교의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019년 36만5000원에서 지난해 49만1000원으로 4년 사이 13만원 가까이 늘었다. 중학교도 같은 기간 33만8000원에서 44만9000원으로 10만원 이상 늘었다. 초등학교도 코로나19가 유행했던 2020년 잠시 주춤했던 걸 제외하면 꾸준히 늘고 있다.
전국 사교육비 총액은 2021년부터 매년 최고치를 경신해 지난해 27조100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2022년(26조원) 대비 4.5% 늘어난 것으로,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3.6%)을 웃도는 수치다.
이 때문에 사교육 수요를 흡수하는 대책이 아닌 서열화된 경쟁구조를 완화하는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과열된 입시 교육열을 식히면서 서열화를 완화하는 차원의 전략이 필요하다”며 “대학 정원을 자율화하고 무전공 입학을 늘리는 식으로 입시 병목 현상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입시보다 느슨한 현재 대학 교육을 고려해도 대입 전이 아닌 아닌 대학 교육 과정을 강화해야 한다”며 “지방대 경쟁력 강화와 수능 절대평가 과목 확대 등도 방안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