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무색하게 쌀 소비는 매년 줄어들고 있다. 1990년대 초 120㎏에 달한 1인당 쌀 소비량이 지난해에는 55㎏으로 반토막 났다. 일제강점기에 살길을 찾아 간도로 떠난 농민들이 볍씨를 품고 가 그 추운 지방에서도 기어코 논을 만들고 쌀밥을 지어먹었다지만, 먹을 것이 넘쳐나는 시대를 사는 후손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의 소중함은 쉽게 와닿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매년 가을이면 쌀값이 폭락하고 농민들이 다 익은 벼를 갈아엎었다는 뉴스가 쏟아진다. 남아도는 쌀을 정부가 구매해 보관하는 비용도 연간 4000억원이 넘는다.
이웃 나라 일본은 정반대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쌀 품귀와 가격 폭등이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다. ‘레이와(일본의 연호)의 쌀 소동’이라고 불리는 이번 사태에 일본 정부가 비축미 21만t을 풀었지만 좀처럼 진정세를 보이지 않는다. 지난달엔 쌀값이 전년 동기 대비 92.1%나 뛰어올랐다. 일본은행이 직원 급식에 대만산 수입쌀을 쓰기 시작했다거나, 한국을 찾은 일본 관광객이 대형마트에서 쌀을 사서 귀국한다는 뉴스가 나올 정도다.
그 덕분에 한국산 쌀의 일본 시장 진출에도 사실상 첫 물꼬가 트였다. 관세가 붙어 국내 판매 가격보다 두 배가량 비싸지만, 도쿄의 한국 슈퍼마켓과 농협금융지주의 온라인몰에서 판매한 한국 쌀 2t이 열흘 만에 품절됐다. 다음달에는 10t을 수출한다고 한다. 기후변화로 인한 흉작과 벼 재배 면적 감소 등이 부른 일본의 쌀 대란이 장기화한다면 본격적인 수출도 기대해 볼 만하다. 물론 일본의 1인당 쌀 소비량이 우리보다 적은 50.7㎏에 불과한 데다 관세 장벽이 높아 섣부른 예단은 금물이다.
국내에서 주로 재배하는 벼의 품종은 해들, 알찬미, 참드림, 삼광, 신동진 등이 있는데 이번에 수출한 ‘땅끝햇살’은 전남 해남군의 공동브랜드로 품종은 새청무다. 쌀알이 투명하고 단단해 밥을 지으면 윤기가 흐르고 식감이 쫀득한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고시히카리, 아키바레 등 일본 품종을 속속 대체할 정도로 맛있어진 우리 쌀들이 까다로운 일본 소비자의 입맛도 사로잡길 기대한다.
김정태 논설위원 in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