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주인공은 전쟁 포로다. 서울 출신이지만 월북해 인민군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포로가 된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남쪽에 남는 것도, 북쪽으로 송환되는 것도 거부하고 제3국행을 택한다. 남과 북의 달콤한 권유와 설득에도 그는 오직 “중립국”이라고만 되뇐다.
70여 년이 흐른 지금 또다시 한반도의 청년들이 그런 선택 앞에 설지도 모른다. 이번 무대는 한반도에서 7000㎞ 가까이 떨어진 우크라이나다. 파병 지역인 러시아 쿠르스크에서 포로가 된 북한군 두 명에 대한 처리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국제 조약인 제네바협약에 따르면 포로는 본국 송환이 기본 원칙이지만, 북한과 러시아가 파병을 공식 인정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변수다. 양국의 입장 변화가 없다면 북한군도 러시아군도 아닌 ‘유령 군인’이 돼 제네바협약 적용 대상이 되지 않는다. 포로가 아니라면 본인의 자유의사에 따른 한국행 여지가 커진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송환 방식 협상 등 넘어야 할 난관이 적지 않다.
북한인권단체는 이들이 반역자로 처벌받을 수 있기 때문에 북한 송환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 역시 한국에서 새 삶을 사는 게 최선이라고 보도했다. 우리 정부도 이들의 한국행을 법률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헌법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북한 주민을 우리 국민으로 본다. 대법원 판례도 그렇다. 북한이탈주민법으로 이를 뒷받침하고 있기도 하다. 북한을 벗어난 후 외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사람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간주하고 보호도 한다.
현실적으로는 우크라이나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렸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포로 교환을 제안했지만, 귀환을 원하지 않는 북한 병사는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전쟁터인 줄도 모르고 왔다는 그들의 안타까운 사정을 생각하면 한국행을 적극적으로 설득해 볼 필요가 있다. 이역만리에 팔려 와 목숨을 잃을 뻔한 그들에게 자유의 삶을 살아갈 기회를 주고 싶기 때문이다.
김정태 논설위원 in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