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무색해진 '드릴, 베이비, 드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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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05.26 17:44 수정2025.05.26 17:44 지면A3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작년 7월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 “화석연료 생산을 두 배로 늘리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선거 유세 내내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 구호를 외쳤다. 미국 전역의 셰일가스와 석유 자원을 마음껏 개발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공약이었다.

투자은행들은 그가 재집권하면 태양광·풍력 같은 신재생에너지가 지고, 석유·석탄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엑슨모빌, 셰브런, 할리버튼 등 미국 석유기업이 최대 수혜자가 될 것으로 점쳤다.

[천자칼럼] 무색해진 '드릴, 베이비, 드릴'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정반대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10년간 이어온 미국의 ‘셰일 붐’이 사실상 막을 내리고 있다”고 그제 보도했다. 유가가 손익분기점인 배럴당 65달러 아래로 떨어지면서 수익성이 악화한 셰일 기업들이 시추를 줄이거나 중단하고 있어서다. 월가에서는 올해 서부텍사스원유(WTI) 평균 가격을 배럴당 64달러 수준으로 예상하고 있다. 내년 미국의 하루 원유 생산량이 1.1% 줄어들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코로나 팬데믹 때인 2020년을 제외하면 원유 생산 감소는 무려 10년 만의 일이다. 셰일업계는 미국 전체 원유 생산의 3분의 2가량을 맡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핵심 지지층인 화석연료업계의 뒤통수를 친 모양새다. 그는 미국 휘발유 가격 안정을 위해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증산을 촉구해왔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실제 원유 생산을 늘려 국제 유가를 떨어뜨렸다. 관세 폭탄도 세계 경기 침체 우려를 키워 원유 수요를 줄게 했다. 관세는 철강, 알루미늄 등 시추 장비의 원재료 가격까지 끌어올렸다. 유정에 박는 쇠 파이프 부품은 지난 1분기에만 가격이 10% 상승했다.

애초 트럼프 대통령이 공약한 화석연료 확대와 유가 안정은 함께 잡을 수 없는 ‘두 마리 토끼’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내 공급 확대는 단기적으로 국제 유가의 하방 압력을 키울 수 있다. 하지만 결국에는 유가가 내린 만큼 채산성이 나빠지면서 생산 감소가 불가피해지기 때문이다.

서욱진 논설위원 ventu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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