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비닐 바지를 입고 무대에 선 신인 가수 박진영(JYP엔터테인먼트 대표 프로듀서)의 ‘날 떠나지마’는 가요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파격의 엉덩이춤은 한국 대중음악사 최초의 남성 섹시코드 안무로 기록됐다. 호불호 속에서도 이 곡은 음악방송 1위를 차지했다. 그는 이어 ‘청혼가’(1995년), ‘그녀는 예뻤다’(1997년), ‘HONEY’(1998년) 등을 히트시키며 정상에 올랐다. 2000년대에는 가수보다 프로듀서로 더 빛났다. ‘국민 그룹’ god, ‘월드 스타’ 비, 트와이스를 키워낸 주역이다. 국내 무대에 만족하지 않은 그는 2003년 국내 기획사 중 가장 먼저 미국 시장에 도전했다. 원더걸스가 2009년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 핫100에 진입하기도 했지만, 당초 기대에 미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경험은 훗날 K팝 열풍의 밑거름이 됐다. 그가 원더걸스 홍보를 위해 직접 전단을 돌린 일화는 지금도 회자된다. JYP 소속 스트레이키즈가 최근 BTS의 기록을 넘어 7개 앨범 연속 빌보드 1위를 달성한 것은 그 토대 위에서 가능했다.
그는 자신을 ‘딴따라’라고 불러왔다. 연예인을 낮잡아 부르는 표현이지만, 그는 “음악과 무대에 미쳐 사는 진짜 딴따라”라며 이를 긍정적으로 재정의했다. 지난해 30주년 공연명도 ‘딴따라 JYP’였다. 연세대(지질학과 90학번) 시절부터 유명한 춤꾼이던 그는 지금도 무대 위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유일한 기획사 수장이다. 50세가 넘은 나이에도 철저한 자기 관리와 열정으로 현역 댄스가수 타이틀을 지키고 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공직에 도전한다. 그제 대통령 직속 대중문화교류위원회 공동위원장에 내정된 것이다. 한국 대중문화를 세계에 확산하기 위한 민관 협업 조직을 이끄는 장관급 자리다. 후배들을 위한 실효적 지원을 약속한 그에게 많은 기대가 쏠린다. 2016년 자전적 곡 ‘살아있네’에서 그는 이렇게 노래했다. “날라리 같은 모습 그대로 놀아/그러고도 아직까지 살아남아/그래서 이렇게 아직도 난 배가 고프지.” 음악과 무대, 그리고 공직이라는 새로운 자리에서 ‘딴따라 JYP’의 도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서욱진 논설위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