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김영삼 전 대통령)는 대통령의 영어 실력과 관련해 전설적인 일화를 남겼다. 1990년대 초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의 만남을 앞두고 보좌진과 열심히 예행연습을 했다. 클린턴을 보면 “How are you?”라고 해라, 그러면 “Fine, thank you, and you?”라고 돌아올 테니 “Me, too”라고 하면 된다고 대본을 짰다. 그러나 경상도 억양이 센 YS의 ‘하와 유’는 클린턴에게 “Who are you?”로 들렸다. YS가 조크한다고 여긴 클린턴은 조크로 “나는 힐러리 남편”이라고 받아쳤다. 압권은 이 대답에 YS가 연습대로 “미투”라고 했다는 것이다. 물론 각색이 들어간 얘기지만, “후아 유”, “힐러리의 남편” 대목은 실제 상황이었다.
대통령은 늘 통역을 대동한다. 그러나 대통령 본인이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면 해외 지도자들과 돈독한 인맥을 쌓고, 허심탄회한 소통이 가능하다. 그 덕에 국운을 바꾸는 일도 일어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달 말 교황 장례 미사가 열린 바티칸 성당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무릎을 맞댄 15분간의 담판 끝에 혁혁한 외교적 성과를 거뒀다.
그간 러시아 편을 들던 트럼프가 이 대화 뒤 마음을 바꿔 광물협정서에서 “러시아의 전면 침공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명문화한 것. 우크라이나가 그간 미국 등 서방 국가들로부터 막대한 지원을 받은 배경에도 미국과 영국 의회에서 젤렌스키의 감동적 연설이 큰 역할을 했다.
6·3 대선을 앞두고 그 어느 때보다 영어 실력이 출중한 후보가 많다는 점은 다행스럽다. 역대 한국 관료 중 최고의 영어 달인으로 꼽히는 한덕수 전 총리는 월스트리트저널 사설을 외우면서 그 표현을 실제 대화에 활용한다. 트럼프가 그의 영어를 “아름답다”고 할 정도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도 통역 없이 외신 인터뷰를 한다. 한동훈 국민의힘 경선 후보와 이낙연 새미래민주당 상임고문의 영어 실력도 뛰어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김문수 경선 후보에 대해선 크게 알려진 것이 없다. 글로벌 통상 전쟁이 벌어지는 지금, 한국 대통령은 더 이상 ‘내수용’에 머물 수 없다.
윤성민 수석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