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일본 한신·아와지 대지진(고베 대지진)이 발생한 지 30년 되는 날이었다. 새벽 잠자리를 덮친 규모 7.3의 지진은 6400여 명 사망과 10조엔 이상의 경제적 피해를 가져왔다. 주택 51만 채가 무너지고 7000채 이상이 불에 탔다.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의 참상이 워낙 강렬해서 그렇지, 당시 견고함을 자랑하던 한신고속도로(고베~오사카)의 고가도로 부분이 통째로 옆으로 무너진 모습은 여태껏 기억에 남을 만큼 충격적이었다.
“패미콤(닌텐도의 오락기기)을 하고 싶어요”. 무너진 건물에서 57시간 만에 구조된 열 살 소년이 기자들에게 했다는 말이다. 그 후 닌텐도는 게임기 5000대를 구호물품으로 지진 피해 지역에 보냈다. 광고 효과를 노린 건지는 몰라도 게임기가 아이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을 것이다.
그렇지만 재난 지역에서 무엇보다 급한 건 먹고 마시고 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 음식과 물 그리고 모포다. 고베 대지진 생존자들 역시 물류 단절 속 구호가 늦어져 상당 기간을 고통스럽게 보내야 했다. 크고 작은 자연재해를 겪으며 가정에 비상식량과 물품을 비축하는 일본인이 많아졌다. 정부와 언론도 적극적으로 권한다. 그 방법의 하나가 ‘롤링 스톡(회전 비축)’이다. 보존 기간이 지나면 폐기하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의 자연스러운 비축이다. 일정량의 식료품과 식수 등을 비축해 두고 오래된 순으로 소비하고 곧바로 채워 넣는 방식이다. 식품기업들도 보존 기간을 늘린 다양한 제품을 개발해 내놓고 있다. 시장 규모는 수천억원에 이른다.
규슈 미야자키현에서 지난해 8월에 이어 며칠 전에도 강진이 발생하자 다시 난카이 해곡 거대 지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거대 지진 땐 물류 단절로 편의점 등이 1주일 정도 문을 열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고베 대지진 30년과 겹치며 1주일 치 정도를 비축하는 롤링 스톡을 권유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자연재해보다 인재(人災)가 더 많은 우리에게는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한 번쯤 점검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만사 불여튼튼이다.
김정태 논설위원 in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