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발언이 尹 주장 깨는 주요 논거
탄핵 찬성 여론에 담긴 ‘尹 불신’ 읽었나
헌재 “尹 복귀 시, 권한 행사할 때마다
국민은 숨은 목적 의심해야 돼 혼란”
여기에는 자신이 ‘검찰총장을 지낸 우리나라 최고의 법 전문가’라는 생각이 깔려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이 그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은 ‘법 전문가’라기보다는 ‘법 기술자’에 가까웠다. 뻔해 보이는 거짓을 사실로 포장하거나, 궤변이나 억지를 막무가내로 늘어놓는 경우가 많았다.
윤 전 대통령은 이렇게 함으로써 헌재재판관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으로 봤겠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이번 헌재 결정문을 자세히 보면 윤 전 대통령이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쏟아낸 말들이 윤 대통령의 다른 핵심적인 주장과 논리를 무너뜨리는 주된 근거로 인용됐다는 사실을 여기저기서 확인할 수 있다. ‘법 기술자 윤석열’이 ‘대통령 윤석열’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예컨대 헌재는 ‘비상계엄 선포의 목적은 군사상 필요에 따르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계엄법 2조 2항에 12·3 비상계엄이 위배되는지 여부를 판단하면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피청구인(윤 전 대통령)은 줄곧 이번 계엄이 야당의 전횡과 국정 위기 상황을 국민에게 알리고 호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선포된 ‘경고성 계엄’ 또는 ‘호소형 계엄’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러한 주장만으로도 피청구인이 이번 계엄을 중대한 위기 상황에서 비롯된 군사상 필요에 따르거나 위기 상황으로 인하여 훼손된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선포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어 헌재는 ‘대국민 호소’라는 목적 자체도 진실성이 없다고 판단했는데, 그 주된 논거 중 하나가 “계엄 해제에 적어도 며칠 걸릴 것으로 예상했는데 예상보다 빨리 끝났다”고 한 윤 전 대통령의 발언이었다.
이뿐 아니다.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문서로써 하며, 이 문서에는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副署)한다. 군사에 관한 것도 또한 같다’고 돼 있는 헌법 82조와 관련해서, 윤 전 대통령은 ‘보안상의 이유 때문에 이를 이행할 수 없었다’는 취지로 변명했다. 그러나 헌재는 “대통령실 대접견실에 국무회의 구성원 11명이 모여 있을 때 부속실장 강OO가 계엄선포문 10부를 복사하여 김용현에게 전달했다”고 한 윤 전 대통령의 발언을 들어 앞부분 윤 전 대통령의 ‘변명’은 수긍하기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국회의원의 국회 출입 통제 논란과 관련해서도 비슷한 장면이 있다. 윤 전 대통령은 8차 변론에서 “종이를 놓고 (김용현) 장관이 경찰청장하고 서울청장에게 국회 외곽의 어느 쪽에 경찰 병력을 배치하는 게 좋겠다고 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제가 봤습니다”라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은 다른 의도로 이 말을 했지만, 헌재는 이를 “경찰로 하여금 국회의원의 출입을 통제하도록 한 사실이 없다”는 윤 전 대통령의 주장이 거짓이라고 판단하는 증거로 삼았다.이번 탄핵정국을 돌이켜보면 심판 절차가 진행된 4개월간 탄핵 찬성 의견이 줄곧 반대를 압도했다. 한국갤럽 조사를 기준으로 두 답변의 격차가 가장 좁혀졌을 때가 57% 대 38%, 19%포인트 차이였다. 우리 국민들이 복잡한 법적 쟁점을 조목조목 가려가며 이런 판단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 이상 국가긴급권이 정치적 목적으로 남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국민에게 큰 충격을 던지고도, 반성은커녕 변명과 거짓으로 일관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불신이 이런 숫자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번 결정문에는 헌재가 ‘이런 국민 불신과 불안을 이심전심으로 읽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구절이 있다.
“만약 피청구인이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다시금 행사하게 된다면, 국민으로서는 피청구인이 헌법상 권한을 행사할 때마다 헌법이 규정한 것과는 다른 숨은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닌지, (중략) 끊임없이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피청구인의 권한 행사에 대한 불신은 점차 쌓일 수밖에 없고, 이는 국정운영은 물론 사회 전체에 극심한 혼란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필자는 이 대목이 헌재가 대통령 파면을 결정하게 된 가장 중대한 사유라고 본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의 신임을 잃은 대통령’이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민의 신임을 잃은 민주국가의 대통령이란 ‘호수 위에 뜬 달그림자’일 뿐이다.
천광암 논설주간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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