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밍햄 시위부터 워싱턴 연설까지
완벽히 짜여진 전략대로 운동 나서
◇마틴 루서 킹/조너선 아이그 지음·장상미 옮김/808쪽·4만8000원·아르테
1963년 1월, 강력한 인종주의를 공약으로 내건 정치인이 미국 남동부 앨라배마 주지사로 취임했다. 당시 앨라배마주의 최대 도시 버밍햄에는 “황소(bull)처럼 끈질기게 인종 계층 체계를 수호하겠다”고 공언한 ‘불 코너’가 공공안전 위원으로서 경찰과 소방을 지휘하고 있었다. ‘남부에서 가장 험한 도시’라는 말은 과언이 아니었다. 흑인을 겨냥한 폭탄 테러가 끊이지 않아 ‘봄빙햄(Bombingham)’이라고도 불렸다.
이 무렵, 마틴 루서 킹은 다음 시위 집결지로 버밍햄을 낙점했다. 선지자 혹은 정치인으로서의 역량이 무르익은 때였다. 단순히 흑인 공동체의 반감이 큰 지역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대중매체로 급부상한 텔레비전을 통해 ‘선한 자와 악한 자가 등장하는 드라마’를 선보이기에, 폭압이 난무하는 버밍햄은 최적의 로케이션이었다. 책은 “킹은 극작가 역을 맡기로 했다”고 이 결정을 표현한다.
경찰견과 소방 호스를 앞세운 야만적 진압이 TV를 타고 알려지자, 킹의 예상대로 전국적인 반발이 일었다. 한 달 남짓 이어진 버밍햄 시위 이후,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강력한 민권법 추진을 선언한다. 그 기세를 몰아 워싱턴에 결집한 25만 명 앞에서, 킹은 세기의 연설을 남겼다.“저는 꿈을 꿉니다(I have a dream). 흑인 어린이와 백인 어린이가 손잡는 꿈을….”
책은 이처럼 평화주의자이기 이전에 ‘냉철한 전략가’였던 킹의 면모를 조명했다. 치밀한 전략을 통해 킹이 흑인 민권운동을 ‘반전운동’ 등 국경 밖 보편적 인권운동으로 발전시킨 흐름까지 좇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자 출신인 전기 작가가 미 연방수사국(FBI) 문서와 미발표 구술 녹음본, 개인적 편지, 지인들이 남긴 미출간 전기까지 조사해 일대기를 핍진하게 복원했다. 저자는 이 책으로 2024년 퓰리처상 전기 부문을 수상했다.
킹의 명과 암을 입체적으로 다룬 건 이 책의 또 다른 강점이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했던가. 킹은 불륜을 계속했고, 여성 동료들에겐 지도자 자리를 내어 주지 않았다.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렸고, 완벽한 지도력에 대한 강박이 극심했다. 저자는 킹과 잘 알고 지낸 인물 수백 명을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이를 생생하게 재구성했다. 흑인 인권운동의 거목 제시 잭슨, 유명 가수 겸 활동가 해리 벨라폰테 등을 아우른다. 책의 숨은 주인공은 킹의 부인, 코레타 스콧 킹이다. 숱한 살해 위협과 부담감 가운데서도 마틴 루서 킹이 공포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부인 덕이 컸다. 코레타는 남편이 짜는 체스판에 현명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킹은 그녀의 말에 언제나 귀 기울였다. 킹이 생전 “코레타는 투쟁의 과정에서 언제나 나보다 더 강했다”고 밝혔다. 코레타는 2006년 별세 전까지 여성과 성소수자의 권리, 핵무장 해제, 에이즈 인식 개선 등 무수한 대의를 위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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