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순수와 불안 사이… 인상파가 그린 어린날의 초상

13 hours ago 5

모네가 그린 8살 아들의 초상화… 밝음-어두움 교차해 묘한 분위기
르누아르, 부유층 자녀 많이 그려… 당시 출산율 낮아 아이 귀한 대접
인상파 명화에 해설 덧붙여 소개
◇우리가 잊고 있던 날들/시릴 시아마, 마리 델바르 지음·김소연 옮김/304쪽·3만3000원·더퀘스트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의 ‘실내 풍경’. 자신의 여덟 살 아들 장 모네를 그린 작품이다. 더퀘스트 제공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의 ‘실내 풍경’. 자신의 여덟 살 아들 장 모네를 그린 작품이다. 더퀘스트 제공

푸른 물감으로 무늬를 그린 청화백자 화분에 종려나무가 시원하게 뻗어 있다. 햇볕을 받아 밝게 빛나며 총천연색을 뽐내는 식물과 커튼을 넘어 검푸른 실내 공간. 마룻바닥 위엔 한 소년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덩그러니 서 있다. 이 아이는 클로드 모네의 여덟 살 아들 장 모네. 독특한 분위기의 그림 속에서 아버지는 천진난만하지만 어른들의 세계에서 때로 낯설고, 불안하며, 두려움을 느끼는 소년의 마음을 풀어 놓았다.

이 책은 모네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이 남긴 어린이 그림을 모은 화집이다. 2023년 프랑스 지베르니인상파미술관에서 열린 ‘인상파 화가와 어린이들’ 전시회 도록을 한국어로 번역했다. 전시의 주요 출품작과 더불어 기획자와 연구자의 글, 카미유 피사로의 아들 리오넬 피사로가 아버지에 대해 쓴 글 등이 수록됐다.

클로드 모네의 ‘말 모양 삼륜 자전거를 탄 장 모네’.

클로드 모네의 ‘말 모양 삼륜 자전거를 탄 장 모네’.
책에 자주 등장하는 화가는 모네와 카미유 피사로,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그리고 베르트 모리조다. 르누아르는 자기 자식보다 부유층 어린이를 집중적으로 그렸다. 그림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던 그가 미술 시장에서 의뢰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어린이 초상화를 전략적으로 활용했다. 르누아르는 1879년 살롱전에서 귀족 부인의 자녀를 그린 작품으로 큰 주목을 받았고, 주문이 밀려들면서 어린이 초상화를 자주 그렸다. 이는 19세기 말 프랑스의 사회 변화와도 관련이 깊다. 이 무렵 프랑스에선 가구당 자녀 수가 줄면서 어린이를 보는 사회적 시선이 바뀌었다. 관련 법과 제도도 등장했다. 부유층 어린이를 위한 의복, 게임, 장난감이 판매됐고 부르주아 가정에선 아이 방을 따로 마련해 어린이용 가구와 소품으로 꾸며주는 문화가 생겼다. 르누아르는 이 문화에 발맞춰 아이를 예쁜 모습으로 남기고자 하는 부모들의 욕망을 자극했다.

여성 화가였던 모리조의 그림에선 아이를 향한 따뜻한 시선과 정직한 표현이 느껴진다. 모리조는 딸 쥘리를 자주 그렸는데, 동료 화가인 메리 커샛은 “오로지 어린이의 진실하고 자연스러운 모습만을 그렸다”고 평했다. 자기 자식이니 꾸미거나 미화해서 그릴 수도 있었겠지만, 모리조는 가정주부가 되기를 거부한 진지한 화가였다. 딸을 출산한 1878년을 제외하고 모든 인상주의 그룹전에 참여했을 정도로 화가로서의 삶에 집중했다. 남성 화가들처럼 카페나 술집에서 마음껏 동료들과 교류할 수 없었지만, 그 대신 그들을 집으로 초대했고 딸 쥘리도 자연스레 화가들과 어울렸다.

자기 자식뿐 아니라 동시대 후배 화가들과 그들의 아이들까지 사랑한 ‘아버지’ 피사로의 집은 예술가와 현실 참여적 지성인들의 아지트이자 예술 학교였다. 시인 옥타브 미르보는 피사로의 아들에게 “네 아버지는 내가 어릴 적 꿈꾸던 이상적인 아버지”라고 했다. 폴 세잔은 “내 아버지보다 카미유를 더 믿고 따른다”고 했다. 피사로의 그림 속 아이들은 항상 그림을 그리거나 색을 칠하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있다.

이 밖에도 책엔 폴 고갱, 메리 커샛이 남긴 어린이 그림과 마틴 파, 리네케 딕스트라 같은 현대 사진가들의 작품, 당대 어린이들의 교육 제도나 여가, 그림 속에서 볼 수 있는 의복 문화에 대해 연구한 글이 함께 수록됐다. 인상파 예술가 그룹이 살았던 시대와 공간 속 어린이의 삶을 상상해 볼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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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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