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생의 끝에서 돌아보는 빛나던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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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가트너/폴 오스터 지음·정영목 옮김/256쪽·1만7800원·열린책들


가끔 ‘마지막으로 주어진 시간이 한 달 정도밖에 없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출근은 당연히 안 할 테고, 꼭 가보고 싶었던 곳으로의 여행?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마지막 인사? 유언장 작성? 버킷리스트 작성이 유행일 때 써놓은 것은 있지만, 막상 선택하려고 보니 ‘이게 정말 내가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을 정도로 가치가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쉽게 선택을 못 하고 있는데, 문득 ‘평생 해왔던 것이 사실 마지막까지 가장 하고 싶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따지고 보면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싶은 사람도 가족, 친구 등 사실은 평생을 봐온 사람들이니 말이다.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베스트셀러 소설가이자 시인인 폴 오스터도 그런 마음이었을까. ‘바움가트너(Baumgartner)’는 지난해 4월 타계한 오스터가 투병 중 집필한 생애 마지막 장편 소설. 1주기에 맞춰 출간된 이 책은 은퇴를 앞둔 노교수 바움가트너를 통해 상실과 기억 그리고 현재, 시간의 흐름과 삶의 의미를 내밀한 시선으로 담았다.

이야기 구조는 단순하다. 10년 전 아내를 떠나보낸 노교수(바움가트너)가 어느 날 40년간 함께했던 아내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저자는 반세기가 넘도록 보였던 발군의 기량을 삶의 막바지를 맞은 원숙한 사유와 결합해 한 인간의 삶이 어떻게 기억과 이야기로 남는지 풀어낸다.

“이제 세부적인 것은 기억에 없지만 한 가지, 어딘가에서 차를 세우고 피크닉 점심을 먹었던 일, 모래가 많은 땅에 담요를 펼치고 애나의 아름답게 빛나는 얼굴을 건너다보았던 일은 떠오른다. … 이 순간을 기억하도록 해.”

읽는 내내 굉장히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과거의 기억이 희미한 가스등에 불이 들어오듯 하나둘 떠오르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끄트머리에, 바움가트너 정도는 아니지만, 잃어버린 것에 대한 상실, 감당할 수 없는 슬픔 등도 받아들이며 여기까지 온 기특한 자신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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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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