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미국적이지 않은 것’이 사라진 세상

3 days ago 4

◇우리의 잃어버린 심장/설레스트 잉 지음·남명성 옮김/420쪽·1만8000원·비채


가까운 미래, 미국에선 미국의 것을 보존하고 공공의 안정을 꾀한다는 ‘미국전통문화보존법(PACT)’이 시행되고 있다. 미국에 이롭지 않은 생각과 이념뿐 아니라 ‘미국적이지 않은’ 얼굴을 가진 사람도 탄압을 받게 된다. 학교에선 이런 문제가 나온다. “만일 한국산 자동차가 1만5000달러지만 삼 년밖에 사용할 수 없고, 미국산 자동차는 2만 달러지만 십 년간 사용할 수 있다면 오십 년간 미국산 자동차만 구매해서 절약할 수 있는 돈은 얼마인가?”

어느 날 중국계 시인 마거릿이 반역 혐의에 연루된다. 시위대가 그의 시구를 인용해 PACT 반대 운동을 벌였기 때문. 가족의 삶은 무너지고, 마거릿은 아들 버드가 아홉 살 되던 해 돌연 자취를 감춘다. 3년이 흐른 뒤 버드는 편지 한 통을 받는다. 봉투 속엔 다양한 모습의 크고 작은 고양이 그림뿐 아무 글자도, 내용도 없다. 버드는 편지를 실마리로 어머니의 행방을 찾아 나선다.

차이가 혐오로 변하는 디스토피아를 그린 소설이다. ‘잉(Ng)’이라는 성에서 짐작되듯 아시아계인 작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전면전을 벌이고 있는 하버드대 영문학과 출신이기도 하다. ‘미국 우선주의’가 본격화하는 가운데 미국 사회 곳곳에 스며든 폭력과 고립을 직시하게 만든다. 작가는 이 소설을 두고 “내가 보는 세계를 담은 진실한 기록”이라고 했다. 읽다 보면 내부의 혼란을 가라앉히기 위해 외부의 적을 만드는 건 꼭 남의 일만도 아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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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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