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1000세를 누리려는 억만장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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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 ‘장수 산업’ 분석… 젊어지려 10대 아들 혈장 주입
수명 연장 사업에 거액 투자도… 빈부격차가 수명격차로 연장
◇불멸의 설계자들/알렉스 크로토스키 지음·최정숙 옮김/368쪽·2만2000원·미래의창

“나는 내 몸이 과학기술과 통합된 채 자동으로 돌아가는 상태를 추구합니다.”

미국 테크 기업가 브라이언 존슨은 저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회춘’을 위해 매년 천문학적인 돈을 쓰는 그는 삶을 철저히 통제한다. 온몸에는 신체 지표를 측정하는 건강관리 기기를 차고, 하루에도 수십 알의 건강 보조제를 삼킨다. 노화를 멈추기 위해 17세 아들의 혈장을 자신의 혈관에 주입한 사실이 보도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영생을 꿈꾸는 한 괴짜 과학자의 돌출 행동으로 치부할 수 없다. 오히려 ‘현대판 연금술사’를 자처하는 실리콘밸리 거부들의 현주소에 가깝다.

‘불멸의 설계자들’은 죽음을 정복하려는 사람들의 세계를 추적한 르포형 논픽션이다. 저자는 영국 BBC 방송과 채널4 등에서 기술과 사회과학을 다뤄온 방송인. 2023년 BBC에서 방송된 탐사 보도 시리즈 ‘불멸주의자들, 그들의 비밀’을 바탕으로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과학기술로 인간의 육체·정신을 개조하려는 지적·문화적 운동)과 바이오해킹(Biohacking·생체정보를 파악해 최적의 건강을 찾으려는 행위) 등 실리콘밸리의 ‘장수 산업’을 파고든다.

책에 등장하는 ‘불멸주의자’들에게 죽음은 더 이상 인간의 숙명이 아니다. 고쳐야 할 오류이자 해결 가능한 기술적 문제다. 급진적 수명 연장을 주장하는 영국 생물노인학자 오브리 드 그레이는 “1000세까지 살아갈 인류의 첫 세대는 이미 태어났다”고 주장한다.

그는 인간의 노화를 수리 가능한 기계적 결함으로 보는 ‘공학적 노화 극소화’를 내세운다. 결함을 찾아 고치면 인간은 불멸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처럼 불멸주의자들은 연장된 수명 안에서 또 다른 신기술이 등장하고, 그 기술이 다시 수명을 늘리는 방식으로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고 믿는다.

책에는 실리콘밸리 권력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의 사례가 잇따라 등장한다. 알파벳과 구글의 전 최고경영자(CEO) 래리 페이지는 노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이오테크 자회사 ‘캘리코’를 창립했다. 챗GPT를 만든 오픈AI의 CEO 샘 올트먼은 수명 연장 스타트업 ‘레트로 바이오사이언시스’에 1억8000만 달러(약 2700억 원)를 투자했다. 이 밖에도 제프 베이조스, 피터 틸, 일론 머스크, 비탈리크 부테린 등 이름만 대도 알만한 테크 거물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장수 산업과 연결돼 있다. 저자는 불멸주의자들의 논리가 지닌 공허함도 짚어낸다. 국제적 영생 추구 행사인 ‘라드페스트’에는 미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지 않은 치료법과 검증되지 않은 상품들이 뒤섞여 있다. 자신의 생활 관리법을 담은 각종 상품을 판매하는 존슨의 사례에서 보듯, 영생 산업은 몽상가들의 이상만이 아니라 거대한 비즈니스이기도 하다. 이들이 말하는 영생의 약속과 그 혜택이 누구에게 가장 먼저 도달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도 피할 수 없다. 냉혹한 빈부 격차가 수명의 격차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혈장교환술로 젊음을 얻으려 하지만, 그 반대편에는 생계를 위해 혈장을 팔 수밖에 없는 빈민들이 존재한다. 부의 불평등이 생명의 불평등으로 확장되는 단면이다.

그동안 실리콘밸리의 역사는 ‘파괴적 혁신’이란 말로 설명되곤 했다. 비현실적으로 보였으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기존 질서를 바꿔 왔다. 그러나 진정 죽음마저 기술의 힘으로 정복할 수 있을까. 책은 이 질문에 단정적으로 답하지 않는다. 대신 영생불멸을 꿈꾸는 인간의 가장 오래된 욕망이 오늘날 어떤 산업과 권력의 얼굴로 나타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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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지원 기자 4g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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