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공주 제민천 일대는 한때 관공서와 병원이 모여 있던 중심지였다. 하숙집이 줄지어 늘어섰고 대형 극장도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신도심에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점차 쇠락했다. 셔터를 내린 가게들 사이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고 골목은 활기를 잃었다.
그랬던 제민천 주변이 다시 바뀌고 있다. 특색 있는 가게가 하나둘 들어서면서다. 특히 서점은 특유의 차분하고 정적인 분위기로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공주의 골목과 잘 맞아떨어졌다. 독립서점들은 ‘텍스트힙’(독서를 멋있는 행위로 소비하는 흐름) 열풍을 타고 골목을 대표하는 ‘힙한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2024년 이곳에 문을 연 ‘책방, 잇다’ 우주희 책방지기는 “골목을 천천히 걸으며 가게를 둘러보는 사람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말했다.
2019년 ‘가가책방’을 연 서동민 책방지기는 “처음엔 사람이 거의 없는 조용한 동네였다”고 회상했다. 당시만 해도 인근에 독립서점은 전무했다. 그는 심리적으로 편안한 분위기의 동네일수록 책방이 잘 어울린다고 판단했다. 그가 운영하는 무인 책방은 방문객들이 남긴 쪽지로 벽이 빼곡히 채워져 있다.
길이 정비되고 문화 공간이 하나둘 생기면서 제민천 일대 분위기는 빠르게 달라졌다. 독립서점뿐 아니라 갤러리와 공방도 자리 잡았다. 서점의 인기가 높아지자 직접 책을 만들어볼 수 있는 ‘책공방 북아트센터’도 지난해 문을 열었다.
제민천은 주민에게도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 책방, 잇다는 떡볶이 가게가 있던 자리에 들어섰다. 방문객이 틀어박혀 독서에 몰입할 수 있게 돕는 구석 공간은 시간을 천천히 느끼게 하고 싶은 책방지기의 마음을 담고 있다. 마음에 드는 구절을 따라 쓸 수 있는 필사노트까지 준비돼 있다. 우 책방지기는 “옛 떡볶이집을 기억하는 분들이 다시 찾아온다”며 “예전의 기억 위에 새로운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배다리 헌책방 골목’으로 유명한 인천 금곡동의 분위기도 변하고 있다. 최근 이 골목에서는 이색적인 ‘이사’가 진행됐다. 옛 동성한의원 건물에서 약 280m 떨어진 옛 충인쌀상회 건물까지, 151명이 줄지어 서서 책을 손에서 손으로 옮겼다. 독립서점 ‘나비날다 책방’의 이전을 돕기 위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것. 배다리 헌책방 골목은 이제 단순히 헌책을 파는 곳을 넘어 독립서점과 그림책방, 북카페가 어우러진 복합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인천 원도심과 호흡하는 책방도 있다. 화수동 주민들에게 ‘문화복지 플랫폼’ 역할을 하는 ‘책방모도’다. 이곳은 6·25전쟁 피란민과 근로자들이 모여 살던 동네로, 고(故)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배경으로도 알려져 있다. 2018년 문을 연 책방모도는 단순히 책을 파는 공간에 머물지 않는다. 인터넷 주문이 어렵고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위해 전화로 주문을 받아 책을 전달하기도 한다. 문서희 책방지기는 “주민센터를 통해 주문을 받아 직접 책을 보내드린 적도 있다”며 “인터넷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접근성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책방모도 역시 처음부터 동네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은 아니었다. 익숙하던 슈퍼마켓 자리에 들어선 낯선 공간이었다. 그러나 자녀 문제집을 사러 온 부모, 먼 책방까지 가기 어려운 어르신이 하나둘 발걸음을 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곳에서 만드는 ‘굿즈’ 역시 지역의 삶과 맞닿아 있다. 책방모도는 매년 바다 물때를 표시한 달력을 제작해 주민들에게 나눠준다. 바닷일과 일상이 맞물린 지역에서 물때 달력은 꼭 필요한 생활 정보다.
논밭 한가운데에서 분위기를 바꾸는 책방도 있다. 강화도의 ‘국자와주걱’이다. 오래된 집을 고쳐 만든 이곳에는 일부러 시간을 내 찾아온 사람들이 머문다. 김현숙 책방지기는 “어릴 때부터 오던 손님이 자라 다시 찾아오고, 부모 손을 잡고 왔던 아이들이 또 다른 방문객이 된다”며 “손님과 책방이 함께 나이를 먹어간다”고 말했다. 그는 동네 사람들의 취향을 기억해 책을 권하고, 필요한 책을 직접 전해주기도 한다. 김 책방지기는 “이곳은 집 같고, 외갓집 같은 공간”이라고 말했다.
공주·인천·강화도=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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