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줄기를 따라 놓인 강변북로를 타고 경기 고양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시선을 끄는 풍광이 있다. 강변에 근사하게 들어선 지식산업센터들이다. 고양 덕은지구는 업무용지의 절반 이상이 이 지식산업센터로 채워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대부분의 건물 안은 텅 비어 있다. 인근 공인중개소 관계자는 “공실률이 70% 이상 된다”며 “마이너스 프리미엄이 붙은 매물이 쌓여 있다”고 말했다.
유튜브 집코노미 채널을 진행하면서 전국 곳곳을 취재 다닌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건 바로 이 지식산업센터다. 덕은지구엔 지하철이 없고 버스가 유일한 대중교통 수단인데, 이마저도 배차 간격이 40여 분에 달한다. 교통 불모지인 이 수도권 베드타운에 올해까지 지식산업센터 5000여 실이 들어선다. 근처 향동지구도 상황은 비슷하다. 향동동에 공급되는 지식산업센터는 4000실이 넘지만 절반 이상이 공실이다. 한 투자자는 “임차 업체를 구하지 못해 매물로 내놨는데도 팔리지 않아 대출 이자만 매달 200만원 이상 내고 있다”고 토로했다.
과열됐던 투자 열풍
지식산업센터의 태생은 영세 업체의 입지난 해소를 위해 도입한 아파트형 공장이다. 2010년 산업집적법이 제정되면서 지식산업센터로 이름을 바꾼 뒤 도시형 산업시설로 변모했다. 저금리에 집값이 치솟던 지난 정부 때 각종 규제가 주택에 집중되자 지식산업센터는 이를 대체하는 수익형 부동산으로 급부상했다.
아파트와 달리 대출 규제가 적용되지 않아 분양가의 90%까지 대출받을 수 있는 데다 분양권 전매도 가능했다. 주택 수에 포함되지 않아 각종 과세 중과를 피할 수 있었다. 입금 순서를 초 단위로 따져 앞선 사람에게 당첨 자격을 주는 일명 초치기 청약까지 등장할 정도로 완판 행진을 이어갔다.
건설사 입장에선 까다로운 아파트 공사와 비교하면 허가가 잘 나오고 민원이 적은 편한 사업이었다. 수도권 공장 총량제를 적용받지 않다 보니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자족 기능 향상’이라는 명목으로 지식산업센터의 무더기 공급을 묵인했다. 인허가는 매년 100건 이상씩 늘었고, 전국 지식산업센터는 1529곳으로 4년 전보다 362곳 증가했다.
이자 폭탄에 경매행
상황이 반전된 건 얼마 전부터다. 우후죽순 공급된 지식산업센터는 최근 경기 침체로 대규모 공실 사태와 대출 부실 가능성에 직면했다. 급증한 인허가와 감소한 임차 수요로 미분양 위험이 커졌다. 금리까지 오르다 보니 지난해 경매에 나온 지식산업센터 수는 23년 만에 최다를 기록했다. 건설사들이 경쟁적으로 지식산업센터를 지으면서 토지 매입 비용과 공사비가 상승하고 프로젝트파이낸싱 대출 규모가 급증했다.
지식산업센터를 본래 취지에 맞도록 정상화하고 발전적 대안을 모색해야 할 때다. 지금처럼 규제 사각지대에서 과잉 공급되는 방식이 아니라 수요자 중심의 체계적 시장으로 재편돼야 한다. 지자체 조례 등 지침을 마련해 완급 조절을 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업종 확대 등 대책을 내놨지만 그렇다고 공실이 저절로 채워지진 않을 것이다.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원래 기능에 충실하도록 법적 체계를 정비하고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 빚으로 산 공실 건물들이 부동산 뇌관이 되는 일은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