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의 끝이 보이고 있다. 최근 전기차 판매량이 급증하면서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캐즘은 2027~2028년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당초 예상보다 더 빨리 캐즘이 끝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 韓, 전기차 판매 125% 급증
6일 미국 시장조사업체 콕스오토모티브, 중국승용차협회(CPCA),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 산업통상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 글로벌 주요 시장의 전기차 판매량은 일제히 회복세를 보였다.
지난 5월 유럽 전기차 판매량은 26만8000대로 전년 동월보다 39.1% 급증했다. 프랑스(92.7%) 이탈리아(86.5%) 독일(39.3%) 등도 두 자릿수 증가세를 보였다. 같은 기간 유럽 내 내연기관차(가솔린·디젤) 판매량이 19.0% 급감한 것과 대조적이다.
지난 5월 중국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동기보다 16.6% 증가한 88만6000대를 기록했다. 신차 판매 중 전기차 비중은 사상 최고치인 56.9%로 치솟았다. 올해 3월까지 전년 대비 감소세를 보이던 중국 전기차 판매는 지난 4월을 기점으로 상승 전환했다.
한국에선 지난 5월에만 전기차 판매량이 65.4% 늘었고 1~5월 누적으로는 125.3% 급증했다. 지난 5월 팔린 수입차 절반가량(48.6%)도 전기차였다. 미국 시장은 중고 전기차가 수요를 떠받쳤다. 지난 5월 중고 전기차 판매량은 4만2923대로 전년 동기 대비 24.7% 늘었다. 지난해 10월 보조금 폐지 여파로 지난 5월 신규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동기보다 21.9% 줄었지만, 올해 1월(-29.9%) 후 감소 폭은 매달 축소되고 있다.
◇ 배터리값 3년 새 28%↓
당초 업계에서는 전기차 캐즘이 2027~2028년에야 끝날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충전 인프라 부족과 짧은 주행거리, 내연기관차 대비 높은 초기 구입 비용 등 구조적 문제가 단기간에 풀리기 어렵다는 전망이 많았다.
업계에선 중동 분쟁으로 유류비 부담이 커진 가운데 제조 원가 절감으로 전기차 가격이 낮아지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블룸버그NEF에 따르면 전기차용 배터리팩 가격은 지난해 킬로와트시(㎾h)당 99달러로 2년 연속 100달러 밑으로 내려갔다. 2022년(㎾h당 138달러)과 비교하면 28.3% 감소했다. 저가형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채택이 늘고 중국발 공급 과잉이 겹친 결과다.
제조 기술 혁신도 차값 인하를 뒷받침했다. 배터리 셀을 모듈 단계 없이 곧바로 팩에 장착하는 ‘셀투팩’ 기술이 도입되자 부품이 줄어 제조 단가가 절감됐다. 테슬라 모델Y의 경우 2022년형이 6만4000달러였는데 2026년형 가격은 4만9000달러로 낮아졌다. 현대자동차 아이오닉 5도 2021년 말 출시 당시 4만달러 안팎이던 가격이 2026년형 기준 3만7000달러대로 내려갔다. 배터리 기술 발전으로 주행거리가 늘어난 점도 소비자 수요를 이끌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전기차 보조금도 수요 견인
각국 정책도 수요 회복을 떠받쳤다. 독일은 2023년 말 폐지한 전기차 보조금을 올해 1월 재도입했다. 2022년 전기차 보조금을 없앤 영국도 지난해 7월 구매 할인 형태의 지원을 다시 꺼냈다. 중국은 직접 보조금을 폐지했지만, 차량 구매세 감면과 노후차 교체 지원 정책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은 연방 보조금이 사라진 자리를 완성차 업체의 인센티브가 대체했다. 지난 5월 신차 전기차 평균 인센티브는 차값의 14%로 평년 대비 두 배를 웃돌았다.
캐즘 조기 종료는 글로벌 자동차산업 판도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에선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카 ‘투트랙’ 전략을 이어가고 있는 현대차그룹이 반사이익을 누릴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시장에서 테슬라를 제외하고 도요타,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등은 현대차보다 전기차 전환 속도가 더딘 편이다. 폭스바겐 등 유럽 업체는 전기차 전환이 늦은 데다 하이브리드카 라인업도 부족하다. 업계 관계자는 “캐즘이 예상보다 빨리 끝나면서 전기차 후발주자 입지가 더 좁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유럽 하이브리드카 열풍…'전차종 라인업' 갖춘 현대차, 존재감 커진다
현대·기아차 판매량 17.7% 증가, 연비 높은 가솔린차 하락세와 대조
2년 전만 해도 유럽 신차 3대 중 1대는 가솔린차였다. 하이브리드카는 전기차로 넘어가기 전 잠깐 거치는 ‘징검다리’ 모델 취급을 받았다. 지금은 상황이 정반대로 바뀌었다. 고유가 국면이 길어지면서 하이브리드카가 유럽 파워트레인 점유율 1위로 올라섰고, 가솔린차는 뒷걸음질쳤다. 미국에 이어 유럽까지 점유율을 끌어올리면서 전 차종에 하이브리드카 라인업을 갖춘 현대자동차그룹이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더 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6일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 집계에 따르면 올 1~5월 유럽연합(EU)에서 팔린 하이브리드카는 179만5071대로 전년 동기보다 12.1% 늘었다. 점유율은 37.8%로 전체 파워트레인 중 가장 높다. 올 들어 5개월간 유럽에서 팔린 신차 3대 중 1대가 하이브리드카였다는 뜻이다. 반면 한때 유럽 시장을 지배했던 가솔린차 점유율은 22.4%로, 2년 전인 2024년(35.6%)보다 13.2%포인트 곤두박질쳤다. 같은 기간 전기차(배터리 전기차) 점유율은 20%로 1년 전(15.3%)보다 4.7%포인트 높아졌다.
유럽 소비자들이 하이브리드카로 눈을 돌린 데는 고유가와 전기차 보조금 폐지가 맞물려 있다. 중동 전쟁 여파로 주유비 부담이 커지자 연비가 높은 하이브리드카에 수요가 몰렸다는 분석이다. 전기차의 비싼 초기 구매가격에 부담을 느끼거나 충전 인프라 부족을 겪는 소비자들이 하이브리드카로 갈아탄 영향도 있다. 신차로만 출시되는 전기차와 달리 하이브리드카는 기존 인기 모델에 엔진만 바꿔 끼우는 경우가 많아 소비자에게 친숙하다는 점도 한몫했다.
이 같은 시장 변화에 힘입어 현대차·기아의 하이브리드카 판매도 늘었다. 현대차의 올 1~5월 유럽 하이브리드카 판매량은 4만8036대로 전년 동기보다 17.7% 증가했다. 차종별로는 투싼(2만6835대), 코나(1만8479대), 싼타페(2722대) 순으로 많이 팔렸다. 기아는 올 1분기 전년보다 24% 늘어난 3만1000대의 하이브리드카를 유럽에서 팔았다. 하이브리드카는 내연기관차보다 가격이 10%가량 비싸 마진율이 높은 만큼 수익성 개선에도 보탬이 될 전망이다.
하이브리드카 인기가 이어질수록 현대차그룹에는 유리한 흐름이다. 전 세계 완성차업체 중 모든 차종에 하이브리드카 라인업을 갖춘 곳은 도요타와 현대차그룹뿐이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유럽에서도 하이브리드카 라인업을 확대할 방침이다. 기아는 유럽에서 선호도가 높은 셀토스와 K4의 하이브리드카 버전 출시를 준비 중이다. 제네시스도 올 하반기부터 G80·GV80 하이브리드카 모델을 유럽 시장에 투입한다. 업계 관계자는 “고유가 국면이 길어질수록 하이브리드카 수요는 꾸준히 늘어날 것"이라며 "전 차종에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갖춘 현대차그룹이 유럽에서 존재감을 더 키울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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