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부자’는 진보 정권을 싫어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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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심리] ‘부자 증세’ 영향 받는 건 중산층 상위권… 양극화 해소하려면 중산층 몰락 막아야

사람들은 대체로 부자는 부동산 세율 인상 등 ‘부자 증세’ 정책을 시행하는 진보 정권을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GETTYIMAGES

사람들은 대체로 부자는 부동산 세율 인상 등 ‘부자 증세’ 정책을 시행하는 진보 정권을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GETTYIMAGES

6월 3일 대선이 있기 전 얘기다. 한 친구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넌 이번 선거에서 보수 후보 찍을 거지?”

“어?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진보 정당이 정권을 잡으면 부자들 세금을 올릴 거고 집값을 잡는다며 다주택자 세금도 강화할 텐데, 넌 부자고 또 다주택자잖아. 그러니 진보 후보를 지지할 리가 없지 않아?”

세금 때문에 집 파는 사람이 부자?
이에 대한 내 대답은 이랬다.

“나도 선호하는 후보와 싫어하는 후보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최소한 부자 관련 정책이 어떠냐에 따라 지지 여부를 결정하지는 않아. 무엇보다 부자, 다주택자가 세금을 많이 매긴다는 이유로 진보 후보를 싫어한다는 건 사실과 다른 얘기야. 노무현 정부나 문재인 정부의 부자 증세, 다주택자 규제로 부자는 더 큰 부자가 됐어. 그런 진보 정권을 부자들이 싫어할 리 없지.”

“내 주위에 강남 아파트를 가진 사람이나 다주택자는 대부분 진보 정당이 정권을 잡으면 세금이 오른다고 불평하던데….”“그 사람들은 진짜 부자가 아니고 중산층 상위권 혹은 부유층 하위권일 거야. 그들에게는 세금이 치명적일 수 있지.”

사람들은 부자 증세가 이뤄지면 부자들이 힘들어질 거라고 생각한다. 부자 관련 세금을 낮추면 부자 감세라며 반대한다. 그런데 세금이 정말 부자를 힘들게 하고 빈부격차를 줄일까. 그게 그리 간단치 않다.

대표적 사례가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세율 인상, 다주택자 규제 정책이다. 두 정부는 다주택자에게 높은 세금을 매겨 집을 팔게 했다. 실제로 연간 몇천만~몇억 원 부동산세 부담을 견디지 못해 많은 사람이 집을 처분했다. 그런데 몇천만 원 세금이 버거워 집을 파는 사람이 진짜 부자일까. 1년에 1억~2억 원을 버는 사람에게 몇천만 원 세금은 치명적이다. 연봉이 2억 원이라고 해도 실수령액은 연 1억2000만 원 정도다. 여기서 몇천만 원을 세금으로 내고 나면 생활이 흔들린다. 하지만 진짜 부자는 몇천만 원 때문에 집을 팔지 않는다. 늘어난 부동산세 탓에 집을 팔아야 했던 건 중산층 상위권, 아니면 부유층 하위권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이제 모두가 안다. 집값은 훨씬 더 올랐다. 부자는 몇천만 원 세금을 냈지만, 이것보다 집값이 훨씬 많이 올랐다. 진짜 부자는 재산이 더 늘었고, 그들을 따라가려 했던 중산층 상위권과 부유층 하위권은 경쟁에서 떨어져 나갔다.

몇억 원 세금은 부자에게도 부담스럽지 않았을까. 그 정도 금액이면 부자도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면 자식에게 미리 아파트를 물려주면 된다. 아파트를 증여하면 증여세가 엄청나게 나온다. 20억 원짜리 아파트를 물려주면 증여세가 6억 원이다. 6억 원 증여세를 낼 수 없는 중산층은 하는 수 없이 아파트를 판다. 그러나 진짜 부자는 6억 원을 내더라도 자식에게 아파트를 물려준다. 부동산세 6년 치를 한꺼번에 냈다고 생각하면 된다. 결과적으로 집값은 올랐고, 부자와 가족 재산은 늘었다. 몇천만 원, 몇억 원 수준의 증여세를 내지 못하는 어설픈 부자는 위기에 나가떨어졌고 진짜 부자들과 재산 격차가 큰 폭으로 벌어졌다. 어설픈 부자는 진보 정권을 싫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진짜 부자는 이렇게 재산을 늘려주고 어설픈 부자와 격차를 확실하게 벌려주는 진보 정권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

시험 어려워지면 성적 중간층 사라져
학교에서 성적 양극화가 문제라고 해보자. 90~100점 맞는 학생들이 있고, 30~40점을 받는 학생들이 있다. 성적 양극화를 줄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고득점 학생들의 점수를 낮추거나 저득점 학생들의 점수를 올리는 것이다. 이때 더 빠르고 확실한 방법은 고득점 학생들의 점수를 내리는 것이다. 이 방법은 간단하다. 시험을 아주 어렵게 내면 된다. 그러면 90~100점 맞던 학생이 70~80점대로 내려앉을 것이다. 30~40점을 받던 학생들은 어차피 문제를 못 풀고 그냥 찍기 때문에 점수는 비슷하게 30~40점대가 나온다. 그러면 30점과 100점이라는 점수 차이가 30점과 70점으로 줄어든다. 성적 양극화가 확실하게 완화된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원래 70~80점 정도를 받던 중간층 학생들 점수가 확 낮아진다는 점이다. 시험이 어려우면 상위권 학생들이 70~80점을 받는다. 원래 70~80점을 받던 학생들도 그대로 70~80점을 유지하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 90~100점 학생들도 못 푸는 문제를 70~80점 학생이 풀 수 있을 리 없다. 점수가 박살이 난다. 30~40점대로 떨어진다. 공부를 하나도 안 한 하위권과 공부를 그 나름대로 한 중위권의 점수가 비슷해진다.

이전에는 그래도 30~40점대, 50~60점대, 70~80점대, 90~100점대 학생이 섞여 있었지만 시험이 어려워지면 대부분 30~40점대고, 일부만 70~80점대를 받는다. 중간층이 사라진다. 90점 이상 상위권 학생이 줄어든 건 맞는데, 중위권까지 함께 없어지면서 전체적인 학력 격차, 성적 양극화는 오히려 심화된다. 상위권 학생의 독점 정도도 더 강해진다. 이전에는 70~80점대 중위권이 상위권 뒤를 바짝 쫓았고, 재수가 좋으면 80점대 학생이 몇 문제를 더 맞혀 90점대로 올라설 수도 있었다. 하지만 중위권이 30~40점대로 떨어지면서 상위권은 등수 경쟁에 전혀 신경을 안 쓰게 된다.

교사들이 성적 양극화를 해결할 방법을 몰라서 시험을 쉽게 내는 게 아니다. 얼마든지 어렵고 까다로운 문제로 고득점 학생이 나오지 않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중위권과 하위권을 구별할 수 없게 된다. 상위권 학생의 경우 점수 자체는 좀 낮아져도 반에서 1~3등을 차지하는 건 전과 똑같다.

사회 양극화를 완화하겠다며 부자에게 고율 세금을 매기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고율 과세로 부자들이 내는 세금이 더 많아지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부자들의 재산 순위가 바뀌지는 않는다. 세율이 높아지면 부자 외에 중산층도 세금을 조금은 더 내야 한다. 그 조금이 중산층에게는 치명적이다. 해외여행을 1년에 한 번 가는 중산층의 경우 1년에 세금이 200만 원만 늘어도 더는 해외여행을 갈 수 없다. 부자는 세금을 많이 내도 부자지만, 중산층은 세금을 조금이라도 더 내면 더는 중산층이 아니다. 중산층에서 하위층으로 떨어지는 건 금방이다.

중남미 국가들은 과거 진보 정부 집권 당시 사회 양극화를 줄이고자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했다. 그러나 중남미는 지금도 양극화가 세계에서 가장 큰 지역이다. 부자들이 부담을 더 지는 건 맞는데 중산층이 몰락했다. 사회에 부자와 빈자밖에 없으니 빈부격차, 양극화는 더 심해졌다고 보는 게 맞다.

부자 증세, 중남미 양극화 키웠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사회 양극화를 해결하려면 부자를 끌어내리기보다 가난한 사람을 위로 올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90~100점 받는 학생들의 점수를 낮추려 하지 말고, 30~40점 받는 학생들의 점수를 높이려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중산층이 망하는 부작용 없이 빈부격차가 줄어든다. 물론 쉽지는 않다. 90~100점 받는 학생들의 점수를 70~80점으로 낮추는 건 간단하지만 30~40점 받는 학생들의 실력을 60~70점 수준으로 올리는 건 굉장히 어렵다. 그러나 진정 양극화를 줄이려면 그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쯤에서 한 가지 분명히 해두자. 사람들은 부자들이 진보 정권을 싫어할 거라고 말한다. 진보 정권은 부자들에게 적대적인 정책을 많이 시행하니 반대할 거라고들 한다. 순진한 생각이다. 중산층 상위권이나 부유층 하위권의 어설픈 부자는 분명 진보 정권의 정책으로 손실을 볼 것이다. 하지만 진짜 부자는 진보 정권이라 해도 별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더 좋아질 가능성이 크다. 부자들은 당연히 보수를 지지하고 진보를 반대할 거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최성락 박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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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주간동아 1496호에 실렸습니다〉

최성락 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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