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중앙정부 산하 국유기업을 사칭한 '짝퉁 국유기업'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부동산 개발, 건설공사, 금융투자, 의약품 무역 등 대규모 자금이 오가는 분야에서 국유기업 간판이 신용 보증으로 통하면서 민영기업이나 사기 조직이 위조 서류를 지분 관계를 꾸미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어서다.
중국 정부가 단속을 강화하고 있지만 국유기업의 복잡한 지배구조와 형식 위주의 기업 등록 심사, 낮은 처벌 수위가 맞물리면서 가짜 국유기업이 하나의 회색 산업으로 번지고 있다.
부동산·금융·건설까지 파고든 '짝퉁'
8일 중국 경제 매체 제일재경 등에 따르면 올 들어 중국 중앙기업과 국유기업 등 관련 기관이 공개한 가짜 국유기업은 1534곳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크게 늘어난 규모다.
이 가운데 기업 등록 상태상 여전히 운영 중인 곳은 1193곳으로 전체의 78%에 이른다. 단속을 통해 드러난 기업만 이 정도라는 점에서 실제 규모는 더 클 가능성이 있다는 게 중국 법조계와 업계의 시각이다.
국가전력투자그룹 산하 기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국가전력투자그룹 그린에너지테크놀로지는 지난달 말 성명을 내고 페이싱즈데이터가 관련 자료를 위조해 자사 자회사로 불법 등록했다고 밝혔다.
그린에너지테크놀로지는 국가전력투자그룹의 전액 출자 자회사다. 이 회사는 성명에서 페이싱즈데이터와 이 회사의 지분 관계 기업들이 그린에너지테크놀로지와 아무런 지분·소속 관계가 없으며 투자·협력·업무 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또 이들이 프로젝트 개발, 투자, 건설, 협력 계약 체결, 대금 수취 등을 하더라도 그린에너지테크놀로지에는 어떤 법적 효력도 발생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중국중신그룹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중신그룹은 지난달 말 중신 명칭을 내건 가짜 기업 91곳을 공개했다. 이들 기업은 중국 본토뿐 아니라 홍콩에도 등록돼 있다.
중신그룹은 해당 기업들이 그룹 및 산하 회사와 지분 투자, 소속 관계, 협력 관계, 업무 왕래가 전혀 없다고 밝혔다. 중신그룹은 올 5월 위챗 공식 계정과 웨이보 등에 중신그룹 루머 반박 플랫폼을 열고 명칭 도용과 허위 지분 등기 문제에 대한 공식 확인 창구를 만들기도 했다.
가짜 국유기업이 시장에서 통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중국에서 중앙기업이나 국유기업 배경은 사업 협상과 금융 조달에서 강력한 신용 보강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지방정부의 투자 유치 프로젝트, 인프라 건설, 부동산 개발, 금융기관 대출 심사에서 국유기업 이름이 붙어 있으면 사업 안정성과 자금 회수 가능성이 높다고 받아들여진다. 시장 참여자들이 국유기업 간판을 사실상 국가 신용의 대리물로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가짜 국유기업 1534곳 적발…78%는 영업 중
실제 피해도 발생하고 있다. 올 초 간쑤성 주취안 경찰은 국유기업으로 위장한 페이퍼컴퍼니가 4300억위안(약 95조원) 규모 국가급 프로젝트를 내세워 전국 20개 기업에서 보증금 4000여만위안을 가로챈 사건을 적발했다.
이 회사는 200위안(약 4만4000원)짜리 위조 인감과 허위 사업 설명을 활용했다. 피해 기업들은 국유기업 배경이 있다는 말과 대형 프로젝트라는 설명을 믿고 보증금을 냈다.
수법도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다. 초기에는 인감과 등록 자료를 위조해 스스로를 국유기업 자회사로 포장하는 방식이 많았다. 하지만 단속이 강화되면서 지분 대리 보유, 허위 합자, 명의 대여 등 더 은밀한 방식이 늘고 있다.
겉으로는 국유기업이 지배주주로 올라가 있지만 실제 경영권은 민영기업이 사적 계약을 통해 계속 쥐고 있는 방식이다. 일부 국유기업 하위 자회사는 관리비 명목의 수익을 얻기 위해 이름만 빌려주고 실제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 법조계에서는 이런 구조가 이미 하나의 회색 산업사슬을 형성했다고 보고 있다. 가짜 인감을 만들고 허위 영업허가증을 마련하는 조직, 회사 등록을 대행하는 업체, 명의를 빌려줄 국유기업을 연결하는 중개업자가 분업화돼 있다는 것이다.
중국 SNS에서 국유기업 명의 대여나 국유기업 혼합소유제 개혁 등을 검색하면 관련 서비스 광고가 다수 노출된다. 일부 중개업자는 중앙기업 지분 인수나 국유기업 배경 확보라는 명목으로 지분 대리 보유 계약도 알선한다. 업계에서는 명의 대여 대상과 지배구조 단계에 따라 연간 수수료가 50만~300만위안 수준에 이른다는 말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근본 원인은 수요와 공급, 감독의 사각지대가 맞물린 데 있다"며 "서류상 지분 구조가 국유기업으로 연결되는 것처럼 보이면 일반 거래 상대방은 최종 실질 지배자를 확인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중국 당국은 뒤늦게 제도 정비에 나서고 있다.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은 지난해 1월 가짜 기업 등기 위법 행위 방지 및 조사·처리에 관한 규정을 발표해 기업 등록 단계의 신원 확인과 허위 등기 취소 절차를 강화했다.
국무원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는 지난해 공식 홈페이지에 가짜 국유기업 신고 플랫폼을 열었다. 일반인도 의심 사례를 신고할 수 있고, 당국은 관련 부처 및 중앙기업과 함께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등기 제한, 등기 취소, 신용 징계 등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했다.
베이징=김은정 특파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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