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애리조나주에서 열린 한 형사 재판에서 AI를 이용해 재현한 피해자의 영상이 진술에 사용됐다고 보도했다.
이 형사 사건은 2021년 11월 미국 애리조나주 챈들러 시의 한 도로에서 시작됐다.
당시 신호 대기 중이던크리스토퍼 펠키의 차량 뒤에는 가브리엘 호르카시타스의 차가 멈춰 섰다. 호르카시타스가 거듭 경적을 울리자 펠키는 차량에서 내려 항의의 제스처를 취했고, 호르카시타스는 펠키를 향해 총을 발사했다. 가슴에 총상을 입은 펠키는 현장에서 사망했다.펠키가 사망한 뒤, 그의 가족들이 그를 대신해 법정에 섰다.
펠키의 여동생 제니퍼 웨일즈는 2년 동안 피해자 진술서를 준비했지만 “아무리 써도 중요한 무언가가 빠져있다는 느낌이 계속 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던 중 “오빠가 법정에서 직접 발언한다면 뭐라고 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녀는 AI 기술을 활용해 펠키의 모습을 재현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웨일즈는 “AI가 악의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누군가는 불편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펠키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라고 설명했다.그녀는 AI로 고인의 영상을 제작한 경험이 있는 전문가와 남편의 도움을 받아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펠키의 음성은 그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치료 후 연설하는 장면이 담긴 유튜브 동영상에서 추출했으며, 얼굴과 몸은 장례식 포스터를 참고했다. AI가 읽을 대본은 웨일즈가 직접 작성했다.그리고 AI로 재현한 펠키의 영상은 애리조나주 마리코파 카운티 법정의 TV 화면에 등장했다.
영상은 이 인물이 AI로 제작된 것임을 밝히는 자막과 함께 시작됐다. 펠키는 “그날 우리가 그런 상황에서 마주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다른 삶이었다면 우리는 아마 친구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면서 “나는 용서와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믿는다. 항상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다”고 진술했다.
마리코파 카운티 고등법원의 토드 랭 판사는 “영상이 정말 인상 깊고 마음에 들었다”면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또 “펠키를 잃은 것에 대한 가족의 분노가 컸겠지만, 나는 영상 속 펠키에게서 용서의 말을 들었다”고 했다.
피고인 호르카시타스의 변호인 측은 “일반적으로 선고 절차에서 피해자 측의 발언은 폭넓게 허용되기 때문에 영상 상영을 막기는 어려웠을 것이다”라면서 “이번 사례는 지나치게 과하다. AI 영상이 선고에 영향을 줬다면 항소심에서는 이를 재판 절차 상의 오류로 간주할 여지도 있다”며 항소 의사를 밝혔다.
이 영상은 법정 밖에서도 뜨거운 논쟁을 불러왔다.브루클린 로스쿨 교수 신시아 갓소는 “선고 과정에서의 AI 허용 여부를 두고 골머리를 썩고 있다”면서 “AI 영상은 사진보다 감정을 더 자극할 것이 분명하기에 법원이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미국 연방 법원의 규칙 제정 위원회는 재판 당사자 간 동의가 있을 경우, AI로 제작한 자료에 대한 증거 기준을 확립하기 위해 논의 중이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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