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호민 사건’ 이후 몰래 녹음 늘어…학생 주머니에 소형 녹음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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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실이 텅 비어 있다. 뉴스1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실이 텅 비어 있다. 뉴스1
“‘몰래 녹음’을 발견한 후 병가를 내야 할 정도로 몸이 안 좋아졌습니다. 제가 가르쳐야 할 아이들을 생각하며 버티고 있습니다.”

수도권 한 초등학교 특수교사 A 씨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이와 같이 말하며 “특수교육 현장에서 ‘몰래 녹음’에 대한 교사들의 불안과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웹툰 작가 주호민 씨 아들에 대한 아동학대 혐의 2심 재판에서 특수교사가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이 사건이 이슈화되면서 녹음기를 몰래 보내는 부모가 늘어 특수교사의 생활지도와 교육이 위축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A 씨는 올 4월 말 본인이 지도하는 1학년 학생의 반팔티 앞주머니에서 소형 녹음기를 발견했다. 해당 학생은 두 겹의 반발티를 입은 상태였는데 체육을 마치고 더워하며 겉에 입은 티를 벗자 안쪽 티 앞주머니에 꿰맨 채 숨겨진 소형 녹음기를 발견한 것이다. 학생은 소형 녹음기를 신기하다는 듯 손에 올려놓고 지켜보는 중이었다.

해당 학생은 평소에 교사나 주변 아이들의 손을 꼬집는 등 위험한 행동을 반복해왔다. 이에 A 씨는 학부모에 자주 연락하며 해당 학생의 문제 행동과 이를 어떻게 지도하고 있는지 설명했다. 하지만 학부모는 그때마다 “우리 아이가 학교에만 가면 문제가 생긴다는 게 안 믿긴다”, “집에서는 안 그런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왔다.

학부모는 ‘몰래 녹음’과 관련해 교사에게 형식적인 사과를 했지만 A 씨 충격은 가시지 않은 상태다. 해당 사건 이후 또 녹음되어 아동학대죄로 신고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OO아 그러면 너 엄마 부른다~”는 식의 사소한 장난도 치지 못하며 혼낼 때도 목소리를 무겁게 내지 않는 중이다. 녹음기를 숨겼다는 소문이 학교에 퍼져 A 씨뿐 아니라 특수교육 실무사, 자원봉사자와 다른 교사들의 생활지도도 전반적으로 위축된 상태다.

‘몰래 녹음’ 사건 이후 A 씨는 적응장애 판정을 받고 혈압도 최대 177까지 오르는 등 몸이 많이 안 좋아졌다. 하지만 학교에는 25년차 특수교사인 A 씨를 제외하고는 전부 신규 또는 기간제 특수교사만 있어 A 씨는 책임감에 병가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는 “주호민 씨 사건 이후 몰래 녹음을 시도하는 학부모가 많이 늘었다”며 “대법원에서까지 무죄가 나와도 녹음 행위 자체에 대한 제재가 없다면 현장이 달라질지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특수교사노조 정원화 정책실장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일도 생기지 않는다’가 교육 현장의 격언처럼 돼고 있다”며 “위기행동을 보이는 학생 당사자가 생활지도를 받을 기회 자체가 축소되는 중”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교육 당국이 ‘몰래 녹음’을 금지하는 고시와 법 내용에 대해 가정에 더 명확하게 안내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학부모가 ‘몰래 녹음’을 하는 이유는 장애학생이 아동학대 피해 사실을 직접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현장에서는 특수교사와 학생 단둘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아동학대가 의심되면 특수교육 실무사, 자원봉사자 등의 이야기를 듣고 학교와 상담하며 대처하는 게 낫다고 지적한다. 정 실장은 “각 교육청 내 ‘장애학생 인권지원단’의 역할을 확대해 소송 전에 갈등조정과 사안조사를 할 수 있게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여근호 기자 yeor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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