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한 갑 10만원으로 올리자"…분노 폭발한 이유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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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구 일대 버려진 담배꽁초 사진/유지희 기자

구로구 일대 버려진 담배꽁초 사진/유지희 기자

18일 오전, 서울 구로구 구로디지털단지역 일대. 출근길 인파가 몰리는 시간, 거리 곳곳은 무수히 버려진 담배꽁초로 뒤덮여 있었다.

담배꽁초는 인도뿐 아니라 도로 한복판에도 버려져 있었다. 담뱃갑이 굴러다니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목격됐다.

가로수 주변에도 꽁초가 수북했으며, 기자가 현장을 지나는 동안에도 흡연자들이 별다른 거리낌 없이 담배를 피운 뒤 꽁초를 길바닥에 툭 던지고 가는 모습이 여럿 포착됐다.

배수로 안을 들여다보자 흡사 하얀 비닐 조각처럼 보이는 것들이 가득했지만, 그것은 모두 젖고 불은 담배꽁초였다.

출처=1trash1follow

출처=1trash1follow

실제 이 지역은 지난달 26일, 청소 인플루언서 '1trash1follow'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 일대를 청소하는 영상을 올리며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그는 동료 인플루언서 10여 명과 함께 골목을 돌며 배수로 덮개를 들어 올리고, 그 아래 수북이 쌓인 꽁초를 손수 수거했다. 영상 속 배수로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할 정도로 꽁초와 쓰레기로 가득했고, 오래된 악취에 숨쉬기조차 어려워 보였다.

이 영상은 게시 직후 40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댓글 창에는 "담배 한 갑 10만 원으로 올리자. 청소는 왜 남이 해야 하나", "흡연구역, 재떨이, 단속. 이 세 개를 동시에 갖추는 게 왜 이렇게 어렵냐", "진짜 한국 맞냐. 다 같이 사는 사회인데 시민 의식이 이 정도라니" 등 분노와 체념이 뒤섞인 반응이 이어졌다.

그러나 청소 후 불과 몇 주 만에 배수로에는 다시 꽁초가 쌓이기 시작했고, 풍경은 제자리로 돌아왔다.

◇"꽁초 투기 개념 없어" vs" 버릴 데가 없다"

구로구 일대 담배꽁초 사진=유지희 기자

구로구 일대 담배꽁초 사진=유지희 기자

이곳의 거리 환경만 나쁜 것이 아니다. 시민들의 인식도 피로감에 젖어 있었다. 직장인 김예지(25) 씨는 "출근길마다 이 길을 지나는데 바닥에 꽁초가 널려 있어 진짜 더럽다고 느낀다"며 "볼 때마다 짜증이 나고 눈살이 찌푸려진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10년째 근무 중인 관리소장 김모(70) 씨는 "담배꽁초를 버릴 수 있는 수거함이 바로 앞에 있는데도 다들 바닥에 그냥 버리고 간다"며"안내문을 붙여놔도 소용없다. 밤사이 쌓인 꽁초 때문에 아침마다 쓰레기통이 꽉 찬다. 하루에 이 건물 앞에만 한 보루 이상은 버려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인근 건물에서 4개월째 일하고 있는 관리인 최모(50) 씨도 같은 목소리를 냈다. 그는 "버리지 말라고 해도 듣지 않는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하는데 대부분 저녁 6시 이후에 술 마시고 와서 담배를 피우고 그냥 버리고 간다"며 "술집 이용객뿐 아니라 걷다가 피우고 배수로에 휙휙 던지고 가는 사람들도 많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흡연자들의 입장도 있다. 거리 인근에서 20년 넘게 자영업을 하고 있다는 60대 이 모 씨는 "흡연 구역 자체가 필요악이라고 생각하고 버릴 곳도 필 곳도 없으니 수로에 버리는 것"이라며 "나도 솔직히 버릴 데가 없어서 배수로에 버린다"고 털어놨다.

이어 "담배꽁초만 버릴 수 있는 간이 재떨이라도 많아져야 한다. 지금은 아예 없다시피 하다"며 "단속이 나온다고 해도 별 효과가 없다. 싸움 나기 일쑤고, 흡연구역은 너무 제한돼 있으니 오히려 문제가 커진다"고 지적했다.

서리풀 재떨이컵/사진=유지희 기자

서리풀 재떨이컵/사진=유지희 기자

이날 찾은 강남역 역시 다르지 않았다. 강남역 10번 출구 앞, 서초구가 설치한 서리풀 재떨이컵’은 있었지만, 인근 배수로에는 여전히 꽁초가 널려 있었다.

재떨이컵 옆에서 담배를 피우던 30대 직장인 김모 씨는 “회사 앞에 이게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며 “강남 전체적으로 흡연 구역이 너무 부족하다. 없으니까 그냥 금연 구역에서도 피우고 꽁초는 버리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단속인력 부족·과태료 부과는 현실적 한계

강남역 인근 골목/사진=유지희 기자

강남역 인근 골목/사진=유지희 기자

실제 현장에서 흡연 단속을 맡는 인원은 매우 제한적이다.

구청 관계자에 따르면, 구로구나 강남역 일대에서 무단투기 단속을 맡은 인력은 8~15명 수준이며, 이들이 흡연 단속까지 병행하고 있지만 특정 지역에 상주하며 단속을 지속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현행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금연 구역 내 흡연 시 최대 10만 원, 길거리 담배꽁초 무단 투기 시 5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러나 실제로 과태료가 부과되는 경우는 드물다. 투척 순간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해야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청 관계자는 "담배꽁초 무단 투기는 전담 인력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일반 쓰레기 무단투기 단속반이 겸임하고 있다"며 "인력이 부족한 데다, 각자 맡은 구역 중심으로 순찰하며 단속을 진행해 특정 지역에 상주하는 건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한 "술집 인근 등은 사유지로 간주해 단속 인력이 들어가는 것에 점주들이 항의하는 경우도 있고, 흡연구역이나 꽁초 전용 쓰레기통 설치에 대해서도 '흡연을 유도한다'는 민원이 있어 확대 설치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제한보다는…시민의식 성숙이 열쇠"

전문가들은 '흡연권 보장'과 '공공질서 유지' 사이의 균형을 위한 해법으로 시민의식 함양을 강조한다. 흡연 구역을 지나치게 제한하면 오히려 무단 투기나 길거리 흡연을 조장할 수 있고, 반대로 흡연자 편의를 지나치게 고려하면 비흡연자의 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박보람 강원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는 "한때 우리 사회가 시민의식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 시민 교육과 시민 참여형 행동 교육을 강조했지만, 전 정부에서 관련 예산이 끊기며 교육 공백이 생겼다"며 "지금 다시 시민 교육을 강화하면 이러한 문제가 자연스레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보통 어떤 규제를 추진하면 부처는 예산 확보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지만, 단속과 운영이 현실적으로 어려워 난색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며 "결국 시민사회가 성숙해지면서 스스로 규범에 대한 눈높이를 높여야 해결되는 문제"라고 진단했다.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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