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월 20일은 부활절입니다. 기독교가 종교를 넘어 하나의 보편적인 문화 전통으로 자리 잡은 유럽에서는 부활절을 기리는 다양한 행사들이 열립니다. 성당과 교회에서는 축하 예배를 올리고, 공연장에서는 부활절과 관련된 오페라와 클래식 곡들이 연주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이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마태수난곡>(Matthäus-passion)입니다.
연주 시간만 3시간 반이 넘는 이 거작은 1729년, 바흐가 봉직하고 있던 독일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에서 처음 공연되었습니다. 그러다 사람들의 뇌리에서 점차 잊혀 갔는데, 정확히 백 년 뒤인 1829년에 펠릭스 멘델스존에 의해 다시 한번 리바이벌되면서 그 진가를 인정받기 시작합니다. 작품의 내용이 ‘마태복음’ 중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다루고 있고, 어느 정도 극음악의 형식도 갖추고 있어서 요즘은 콘서트뿐만이 아니라 오페라와 비슷한 형태로도 자주 공연됩니다.
이 작품에는 수많은 명 선율이 등장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 알토 아리아인 ‘주여, 긍휼히 여기소서 Erbarme dich, mein Gott’입니다. 베드로가 닭이 울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를 세 번 부인한다는 에피소드를 배경으로, 베드로의 비통한 심경을 담은 노래입니다. 구슬픈 바이올린 솔로와 어우러진 알토의 맑으면서도 애절한 독창이 우리의 영혼까지 정화해 주는 기분입니다.
[바흐 <마태수난곡> 中 '주여, 긍휼히 여기소서']
<마태수난곡>이 독일 개신교의 경건하고 금욕적인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면, 장중한 가톨릭의 부활절 음악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Cavalleria Rusticana) 속의 합창일 것입니다. 오페라에 등장하는 음악이지만 요즘은 이탈리아 각지의 성당에서도 부활절 미사의 찬양으로 자주 연주되는 곡입니다. 오페라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에서 일어난 인간적인 갈등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작품의 배경이 부활절이다 보니 찬란하면서도 숭고한 ‘부활절 합창’이 그 속에 등장합니다.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中 부활절 합창]
“하늘의 모후님 기뻐하소서, 알렐루야 Regina caeli laetare, alleluia”로 시작되는 <카발레리아>의 합창은 가톨릭 부활절의 화려하고 장중한 예식적 미학을 제대로 담아낸 명곡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의 성상(聖像)을 마을의 힘센 남자 장정들이 들쳐 메고는 중앙광장을 한 바퀴 돌며 찬양을 부르기 시작하는데, 이 풍습은 원래 스페인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한때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던 시칠리아를 비롯한 남이탈리아에서 그 원형이 더욱 잘 보존 되어있는 느낌입니다. 성상 행렬이 자아내는 장엄한 숭고함과 간절한 기도의 가사 속에 스며든 가슴 찡한 인간적 뭉클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곡입니다.
일찍이 밀라노의 라 스칼라에서 이 오페라를 연출했던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은 이 합창에 너무나 감동을 받은 나머지, 기어이 대규모 촬영팀을 이끌고 시칠리아 현지에서 이를 영화 필름에 담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플라시도 도밍고와 엘레나 오브라초바 등 당대 최고의 성악가들이 총출동한 이 필름은 지금도 해당 오페라의 가장 기념비적인 영상물로 유명합니다. 부활절을 맞이하여 개신교와 가톨릭 등 신구 기독교 세계를 대표하는 최고의 명곡들을 비교해 들어보며, 인간이 갈구해 온 어떤 성스러움에 대해 한 번쯤 사색에 잠겨보는 것도 의미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황지원 오페라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