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학생-임신부, 하루 한끼 무상 제공
올해 예산만 23조원…국가 예산의 7%
중동전쟁 여파 겹쳐 재정적자 경고등
투자자 이탈-환율 급등…대학생 시위 확산
올해 들어 주가지수가 31%나 급락한, 전 세계 증시 수익률 꼴찌를 기록한 나라가 있습니다. 통화가치 역시 폭락해서 거의 외환위기 수준이죠. ‘신흥시장의 총아’에서 골칫거리로 전락한 인도네시아 이야기입니다.한때 돈을 싸들고 인도네시아로 몰려들던 투자자들이 앞다퉈 탈출 중입니다. 그 중심엔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의 정책이 있죠. 급기야 인도네시아 대학생들이 “나라가 파산할 위기”라며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는데요. 인도네시아 경제가 걱정스러운 이유를 들여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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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투자자는 탈출 중
요즘 인도네시아 경제뉴스가 나올 때마다 깜짝깜짝 놀랍니다. 몇 달 전만 해도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거든요.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종합지수는 6월 들어 6000선마저 깨졌어요. 올해 들어 31% 급락하며 전 세계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죠. 자카르타 거래소는 약 10년 만에 동남아시아 시가총액 1위 거래소 자리를 싱가포르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런데도 해외 투자자들이 인도네시아 금융시장에서 발을 빼고 있습니다. 어째 돌아가는 분위기가 영 심상찮다고 보기 때문인데요. 투자자들의 걱정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이겁니다. ‘프라보워 정부를 더 이상 못 믿겠다.’
인도네시아를 지켜온 ‘3% 룰’
풍부한 천연자원(팜유, 니켈, 발전용 석탄 수출 세계 1위)과 젊은 2억8000만명의 인구. 인도네시아는 가진 게 많은 나라입니다. 성장 잠재력이야 늘 충분했죠.인도네시아는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으며 한차례 침몰했는데요. 이를 계기로 이 나라는 완전히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를 이뤘고, 경제적으로는 엄격한 재정 규율을 세웠어요. 이른바 ‘3% 룰’, 즉 연간 재정적자를 GDP의 3% 이내로 제한한다고 2003년 법률로 아예 못박아 버렸죠.
이 ‘3% 룰’은 거의 헌법 수준의 절대적 성역입니다. 이걸 어긴 정부 예산안은 국회가 무조건 심의를 거부해야 하고요. 만약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이를 위반하면 탄핵소추까지도 가능해요. 누구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거죠.
‘조코 위도도의 정책을 계승한다’면서 2024년 10월 취임한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 하지만 그는 초반부터 시장의 기대를 저버리는 정책들을 밀어붙였습니다.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결정적인 건 역시 이거죠. 무상급식.
무상급식의 거대한 청구서
무려 8300만명의 전국 모든 학생과 임신부에 하루 한끼 무상급식을 제공한다는 프라보워 대통령의 야심찬 계획. 전 세계 최대 규모의 무상급식 실험이죠. 이미 딥다이브에서도 그 진행 상황을 소개해드린 적 있는데요. 인도네시아 정부가 속도전을 펼치면서 불과 1년 반만에 수혜 학생 수가 6250만명으로 불어났습니다.그 많은 아이들이 공짜로 점심을 해결하게 됐으니 잘됐다고요? 그런데 요즘 이 무상급식 사업이 보통 시끄러운 게 아닙니다. 이달 초 무상급식을 총괄해온 다단 힌다야나 국가영양청장이 검찰에 체포됐어요. 본인 소유 재단에 급식운영 계약을 몰아준 부패 혐의로요. 정부 핵심 사업이 얼마나 부실하게 운영됐는지가 확인된 거죠.게다가 집단 식중독 사고는 왜이리 잦은지. 시민단체 통계에 따르면 총 3만7270명이 급식으로 식중독에 걸렸다죠. 정부가 정한 1끼 급식값은 1만 루피아(860원). 단가가 너무 낮아 급식이 부실하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논란이 큰 무상급식 사업에 올해 배정된 예산이 얼마냐. 268조 루피아(23조원)이나 됩니다. 그나마 주 6일 무상급식을 주 5일로 줄여서 원래 계획보다 20% 깎인 거예요. 인도네시아 올해 총 예산(3842조 루피아, 330조원)의 7%를 차지하고요. 보건(의료)이나 인프라 건설 같은 핵심 부문 예산을 한참 뛰어넘는 엄청난 규모이죠.
당초 인도네시아 정부는 무상급식을 확대해도 3% 룰은 사수엔 문제없다고 주장해왔어요. 올해 GDP 대비 적자 비율을 2.68%로 막을 수 있다면서요.
그런데 2월 말 이란전쟁이 터졌고요. 이제 계산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당초 올해 예산은 ‘국제유가 배럴당 70달러’를 가정하고 짜여졌는데요. 예상치 못한 고유가 탓에 정부가 국영석유공사에 지급해야 할 에너지 보조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버렸거든요. 국제유가는 올랐지만, 가격을 사실상 정부가 정하는 국내 휘발유값은 동결됐으니까요.
아니, 이러다가 3% 룰 못 지키게 되는 거 아니야? 글로벌 금융시장이 술렁거렸고요. 신용평가사 피치는 지난 3월 “무상 급식을 포함한 복지 지출 증가로 재정적자 위험이 가중될 수 있다”며 인도네시아 신용등급(현재 BBB) 전망을 ‘부정적’으로 하향조정했어요. 국채 투자자들은 재빨리 달아나기 시작했죠. 진짜로 연말에 3%룰 못 지켜서 신용등급 떨어질 가능성이 있으니 미리 발을 뺀 겁니다. 해외 투자자의 국채 순매도로 환율이 뛰고(루피아 통화가치 약세), 환율이 급등하자 외국인의 ‘셀 인도네시아’가 가속화하는 악순환에 빠져버리고 말았는데요.
사실 과거 코로나 팬데믹 당시 인도네시아는 재난 극복을 위해 3년간(2020~2022년) 한시적으로 3% 룰 적용을 유예하는 특별법을 만든 적이 있어요.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죠. 감염병 대응은 일회성이지만, 아이들 밥 먹이는 건 일단 시행하면 되돌리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니까요. 3%라는 숫자 자체보다는 ‘재정 규율의 고삐가 풀리기 시작했다’는 점이 투자자들을 화들짝 놀라 달아나게 만든 겁니다.
폭발한 민심이 ‘국가 파산’ 외치는 이유
외국인 투자자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환율이 역대 최고로 치솟으면서 인도네시아 정부는 비상입니다. 지금은 어떻게든 연말까지 ‘재정적자 3% 선’을 사수하는 게 최우선 과제이죠. 결국 정부가 극약처방을 내렸어요. 이란전쟁에도 억지로 동결해왔던 비보조금 휘발유(옥탄가 RON 92 이상 고품질) 가격을 6월 10일 자정을 기해 30% 넘게 기습적으로 인상했죠(L당 1030원→1396원). 국영석유공사의 적자 폭을 줄여서 나중에 정부 재정으로 메워야 할 보조금 규모를 줄이려는 건데요.예고 없이 날벼락을 맞은 소비자들. 민심은 들끓었고요. 12일 수도 자카르타에선 이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집니다. 대학생 약 1500명이 노란색과 초록색 학교 점퍼를 입고 거리로 나서 밤까지 행진을 했는데요. 이들이 소셜미디어에서 공유한 해시태그가 인상적입니다. “인도네시아가 파산을 향해 간다(#MenujuIndonesiaBangkrut)”

금융시장에선 끊임없이 경고음이 울려대고, 대학생 시위대마저 거리로 뛰쳐나왔습니다. 그럼 프라보워 정부가 이를 계기로 정책 방향을 확 틀게 될까요? 포퓰리즘 정책을 포기하고 재정건전성에 집중할 수 있을까요.
일단 무상급식 사업의 일부 후퇴는 시작됐습니다. 얼마 전 국가영양청은 여름 방학 기간엔 무상급식을 중단한다고 발표했고요. 이어 수혜 대상을 지금보다 대폭 축소(6250만명→4900만명)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하죠.
하지만 아주 급진적인 전환을 쉽지 않을 겁니다. 왜? 프라보워 대통령의 핵심지지 세력인 농민과 서민층엔 무상급식이 여전히 매우 인기 있는 정책이거든요. 농가나 소상공인은 급식 식자재 납품으로 쏠쏠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데, 이 판을 엎기란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프라보워 대통령은 여전히 인기가 높은 지도자입니다. 프라보워 지지율은 6월 초 여론조사에서도 72%를 기록했죠.

“좋은 시절(호황)은 나쁜 경제 정책을 낳고, 나쁜 시절(불황)은 좋은 경제 정책을 낳는다.” 인도네시아에 전해 내려오는 ‘사들리의 법칙’이란 격언입니다. 저명한 경제학자 모하마드 사들리(1922~2008년)가 남긴 말인데요. 프라보워 대통령 취임 이후 현재까지 상황을 보면 사들리 법칙 중 앞부분 절반은 들어맞은 듯하죠. 과연 나머지 절반도 현실이 될 수 있을까요. By.딥다이브
*이 기사는 6월 26일(금요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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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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