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 중국의 한 음란물 사이트에 한국 산부인과 분만실, 병원 수술실, 수영장 탈의실 등에서 촬영된 일반인 영상 수백 건이 올라와 논란이 일었다. 방범·감시용뿐만 아니라 가정 내 돌봄용으로 광범위하게 쓰이는 인터넷프로토콜(IP) 카메라가 해킹당하며 사생활이 광범위하게 유출된 것이다. IP 카메라 해킹은 가전부터 자동차, 스마트팩토리까지 모든 것이 연결되는 사물인터넷(IoT) 시대 ‘사이버 보안 전쟁’의 서막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IoT 보안을 전문으로 하는 지엔은 IoT 기기의 ‘뇌’라고 할 수 있는 펌웨어 보안 분야에 특화된 기업이다. 조영민 지엔 대표(사진)는 14일 인터뷰에서 “스마트화가 고도화될수록 자동차 인포테인먼트 해킹을 통한 사고 유발, 스마트팩토리 가동 중단, 그리드 전력망 마비 같은 리스크가 현실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킹 역량을 보안 강화에 쓰는 ‘화이트해커’ 출신으로 EY한영에서 보안 컨설팅을 담당하던 조 대표는 2021년 지엔을 창업했다. IoT 기기 종류가 수억 개에 달할 정도로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가운데 앞으론 보안이 핵심 화두로 떠오를 것이란 판단에서다.
지엔은 독자 특허 기술을 바탕으로 국내에서 유일하게 기기 내 펌웨어의 취약점을 자동으로 진단하는 솔루션 ‘Z-IoT’를 개발했다. 이 기술은 사람이 1주일 걸릴 리버스엔지니어링(역공학) 분석을 6시간 내로 단축할 수 있다. 무엇보다 제로데이(아직 알려지지 않은) 취약점까지 찾아내는 것이 핵심이다. 최근엔 인공지능(AI) 기반으로 자동 패치 기술을 접목한 솔루션도 내놨다. 조 대표는 “IoT 기기 출하 전 최대한 많은 취약점을 보완해 안전성을 높이고, 새로운 해킹 패턴까지 AI로 방어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지엔은 국내에서 삼성전자, LG CNS, 쿠첸 등 다양한 기업에 보안 컨설팅 및 솔루션을 공급하며 제품 경쟁력을 검증하고 있다. 올해는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선진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방침이다. 조 대표는 “미국은 지난해 IoT 기기에 제품의 보안 수준을 표시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EU는 제품이 갖춰야 할 보안 기준을 강화하는 등 시장이 빠르게 개화하고 있다”며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웹서비스(AWS) 등과 경쟁해야 하지만 변혁기에 우리에게도 기회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